손예진·전미도 연기력으로도 커버하기 어려운 게으른 대본

[엔터미디어=정덕현] 손예진에 전미도가 나오는데 무조건 봐야지.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을 본 시청자들은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게다. <사랑의 불시착>으로 역시 ‘멜로 퀸’이라는 지칭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입증한 손예진이었고,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단박에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전미도였다. 그러니 이 둘이 한 작품에서 절친 케미를 선보인다는데 기대감이 없을 수 있나.

그리고 전제하건대 <서른, 아홉>에서도 손예진과 전미도의 연기는 변함없이 빛난다. 어찌 보면 이들의 연기가 있어 그나마 작품에 몰입하게 되고 나아가 어느 정도의 품격까지 만들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이 작품에서 이들과 함께 3인조 워맨스를 펼치는 장주희 역할의 김지현이나 남자배우들인 연우진, 이무생도 마찬가지다. 연기는 더할 나위없다. 문제는 대본이다.

차미조(손예진)와 김선우(연우진)가 헤어져도 어떻게든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우연의 남발’에서부터 드라마가 너무 쉽게 인물들을 엮는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정찬영(전미도)이 시한부 판정을 받는 대목에서는 서른아홉이라는 연령대를 다루는데 ‘죽음’이라는 코드가 빠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것도 어딘가 전형적인 클리셰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김진석(이무생)과 정찬영의 관계에 대한 ‘불륜 미화’라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면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예감하긴 했지만, 드라마가 ‘불륜 코드’까지 쓰려는 걸까 하는 의심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차미조가 입양된 사실은 그러려니 했지만 시한부를 받아들인 정찬영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며 그의 친모를 찾아주겠다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냈을 때 이젠 ‘출생의 비밀’ 코드도 쓰나 하는 실망감을 버릴 수 없었다.

소재만으로 ‘클리셰 범벅’이라는 평가를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서른, 아홉>은 소재만이 아니라 그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이 전형적인 ‘드라마 문법’이라는 점에서 ‘클리셰 범벅’이다. 김진석과 정찬영의 불륜 코드를 입증하는 건 김진석의 아내인 강선주(송민지)가 정찬영의 부모를 찾아가 당신들 딸이 남편을 만나고 있다고 밝히는 대목에 있다. 불륜 코드는 폭로와 그로인한 충격 등을 활용한다.

정찬영의 시한부 코드는 그가 죽기 전 하려는 여러 버킷리스트들의 이야기에서 그 상투성이 드러난다. 차미조의 출생의 비밀 코드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니 차미조를 키워준 박정자(남기애)와 잘 알던 사이였고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상태였다. 물론 이 출생의 비밀 코드는 주로 ‘신분 상승’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정반대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로 그려진다.

불륜, 시한부, 출생의 비밀 이외에도 김선우의 동생 김소원(안소희)의 파양 에피소드 역시 전형적이다. 양아버지의 강압에 의한 파양, 그로 인한 방황 등등이 그것이다. 어째서 <서른, 아홉>은 이토록 많은 클리셰들을 활용하게 된 걸까. 이건 너무 쉬운 선택들을 한 작가의 태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물론 차미조와 정찬영 그리고 장주희가 보여주는 워맨스와 이들과 엮이는 김선우, 김무생 그리고 박현준(이태환)과의 멜로 구도 자체가 전형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하게 된 건 손예진이나 전미도 같은 배우가 포진해 있어 전형적 구도 속에서도 다른 스토리들이 나올 거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흐름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저 상투적인 전개의 반복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랄까.

<서른, 아홉>은 그래도 시청률이 최고 7%대(닐슨 코리아)까지 올랐고, 5% 사이에서 오락가락 중이다. 그런데 시청률이 이만큼 나오는 건 작품이 대단한 성과를 내서라기보다는 전형적인 클리셰 자체가 가진 자극성 때문이다. 이래서는 이 작품만의 차별적인 성과를 말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배우들의 힘에 의해 겨우 유지되고 있는 드라마의 처지가 안쓰럽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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