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부산 조폭? ‘뜨거운 피’ 관객은 차갑게 안녕

‘뜨거운 피’ 스틸/사진=스튜디오 디에이치엘(이하)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시대를 뜨겁게 역행한 ‘뜨거운 피’다.

얼어붙은 극장가에 좋은 영화가 많이 걸리길 바란다. 그래서 관객이 극장을 다시 신뢰하고 돌아오길 바란다. 기본적 재미도 찾을 수 없는 영화라면 관객을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16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용산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영화 ‘뜨거운 피'(감독 천명관)가 공개됐다.

‘뜨거운 피’는 원론적 흠결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10분쯤 지났을까. 극의 재미는 둘째치고, 완성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음향의 문제가 가장 컸다. 부자연스럽게 고조되는 음악은 ‘어때? 극적이지?’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매끄럽지 않은 편집, 멋을 잔뜩 부린 카메라 무빙도 실소를 터뜨리게 했다.

영화적인 문법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문법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게 우선이고, 기교와 색채는 다음이다. 이는 대학 워크숍에서도 지켜지는 기본적인 부분인데, 충무로 베테랑들이 왜 충실하지 않았는지 궁금한 부분이다.

자막도 절실하다. 마구 퍼붓는 사투리 대사 일부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투리가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음향의 문제인지 연출적인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뜻 모를 대사들이 우당탕탕 지나간다. 어떤 말이 오갔는지 이후 대사나 뉘앙스로 짐작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뜨거운 피’는 1993년 부산 변두리 작은 포구 구암에서 펼쳐지는 건달들을 그린다. 이야기는 뻔하다. 구암 토박이들과 영도파 조직폭력배의 세력다툼. 그 안에 얽힌 욕망, 의리, 배신, 피, 싸움 등이다.

누아르로 포장했지만, 사실 조직폭력배 미화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는 줄거리다. 어떤 이유로 설득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에 이입할 수 없고, 반인륜적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1990년~2000년대 초에 비슷한 영화가 쏟아져나왔다. 당시에는 꽤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제목만 바꾼 듯 우르르 쏟아진 ‘조폭영화’를 관객들은 외면한 지 오래다.

윤리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장르적인 재미마저 부족하다.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되는데 액션도, 드라마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마지막까지 예상 가능한 수준의 이야기에 머무른다.

이 영화에 여성은 없다. 남성 서사만 존재할 뿐, 여성은 그저 소모된다. 남성을 각성하는 도구로 이용되거나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대상으로 묘사된다. “계집장사 한다”, “여자애들 가슴이나 조물딱거리는 것들” 등 여성을 비하하는 대사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성 대부분이 성매매 종사자거나 짙은 화장,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복장으로 등장한다. 성적대상으로 소비해버리는 것이다. 이 역시 과거에 만들어진 ‘조폭 영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2년 관객들이 ‘뜨거운 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장점으로는 최무성의 강렬한 연기와 정우, 김갑수, 지승현, 이홍내 등 배우들의 활약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최근 안방에서는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청자를 붙잡기 위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경쟁도 치열하다. 재미없으면 바로 ‘나가기’ 버튼에 손이 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려면 극장으로 이동해 돈을 주고 표를 구입해야 한다. 기회비용을 고려할 때 영화는 더 재미있어야 한다.

극장의 장벽은 날로 높아져 간다. 2년전, 갑자기 생겨난 코로나19로 달라진 환경 변화 탓이 크겠지만 좋은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면 관객은 돌아올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뜨거운 피’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러닝타임 120분. 15세 이상 관람가. 3월23일 개봉.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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