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4일 근무제, 우리도?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세기의 토요일은 평일처럼 바쁘게 준비해 학교와 직장으로 향했다. 반나절만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즐거웠다. 당연하게 느껴지던 하루 반나절의 휴일은 2000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 정부는 주40시간(주5일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경제단체들은 주5일제 반대 광고를 게재했고, 국민 여론 역시 나뉘었다. 3년 넘게 논란이 지속된 끝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5일제는 본격화됐다. 1000명 이상 사업체와 금융기관을 시작으로 주5일제는 확대되었으며 공공부문은 2005년 하반기부터, 학교는 2012년에 주5일제를 실시했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의 역사와 일치한다. 지난 100년 동안 노동시간은 계속 감소했다. 19세기 미국의 경우 주당 60~70시간 근무는 일반적이었으며 일요일을 제외한 주6일 근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노동조합 등은 노동운동의 핵심 주제로 노동시간 단축을 채택한 경우가 많았으며 8시간 노동은 가장 대표적인 표어가 됐다. 주6일제 노동의 변화는 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의 음주와 피로 누적 등으로 인해 월요일 지각과 결근이 빈발하면서 차라리 토요일 오후를 휴가로 제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사업주들이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주4일제를 시험적으로 실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사진은 시차 출퇴근제를 시행 중인 한 사무실ⓒ연합뉴스

주5일제 본격화된 지 20여 년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노동자와 노동현장에 대한 ‘과학적 관리’를 통해 노동시간 증가 없이도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26년 포드자동차는 이전까지의 주당 60시간이 아닌 40시간 근무라는 파격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시작했다. 주5일제의 본격적 시작이었던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에도 생산성이 유지됨을 증명함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 흐름이 빠르게 확산됐다. 대공황 시기에는 일자리 나눔 등을 목적으로 주30시간 근무제가 미 의회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1938년 공정노동표준법이 제정되면서 미국에서는 주5일 근무제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주5일제 공식 시행으로부터 80년이 지난 최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주4일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의 70여 기업이 6개월의 기한 동안 4일 근무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주4일제를 실시하더라도 주5일과 동일한 생산성을 기록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영국의 싱크탱크인 오토노미(Autonomy)와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그리고 미국의 보스턴대학 연구진이 참여하기로 했다. 생산성, 웰빙, 환경, 성평등, 스트레스, 건강, 에너지 사용 등 다양한 측면의 영향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목적이다. 근무시간은 80%로 감축하되 급여는 종전과 동일하게 100%를 지급하고, 그 대가로 노동자는 100%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실험은 ‘4 Day Week Global’이라는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있다.

일주일 가운데 4일 일하고 3일 쉰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많이 쉬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주4일 근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근무환경 변화로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과 비교할 때 많은 노동자가 매우 열심히, 매우 빠르게 일해야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한정된 인력으로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는 집약화되고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것이다. 1992년부터 2017년까지 시행된 영국의 숙련 및 고용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업무환경 변화로 인해 피로 누적과 번아웃 현상이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지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다음 업무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을 즉각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전자적 메시지 범람으로 인해 업무 처리 집중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지속적인 방해에 노출되면서 노동자 자신은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 강도는 강화되지만 생산성 증가는 미약하고 오히려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 등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4일제 근무가 부각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피곤함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여가시간도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OECD 통계 등을 종합해 보면 1980년대 이후 평균 여가시간은 대다수 국가에서 줄어들고 있다. 2010년대로 좁혀놓고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전과 비교할 때 여가시간이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11%, 네덜란드 6%, 미국 1% 등 다른 주요 국가에서도 여가시간이 감소하고 있다. 1970년대의 경우 남성과 여성 모두 하루 여가시간은 6시간이었지만 최근에는 남성 5시간23분, 여성 4시간47분으로 감소했다. 노동시간 단축에도 여가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육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큰 요인이다.

노동시간 단축에도 생산성은 오히려 향상

과거 육아는 다른 활동에 부수되는 활동으로 여겨졌다. 요리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사이에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은 자신들끼리 별도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양육에서 아이들을 각종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부모나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근처에서 지켜보고 챙기는 육아 방식이 일반화됐다. ‘헬리콥터 육아’라고 부르는 이러한 양육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육아는 이제 별도의 노동처럼 여겨졌으며 부모의 신경과 시간을 대규모로 소모하는 활동이 되고 있다. 직장이 아닌 집에서 새로운 일이 추가된 셈이다. 여기에 더해 스마트폰 도입으로 인해 업무와 여가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것도 여가시간 감소 이유로 꼽히고 있다. 집의 쇼파에서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가 업무용 메일을 확인하고 답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주4일 근무제가 미래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면서 많은 나라와 기업들은 주4일제 근무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지사, 뉴질랜드 유니레버 등이 실시한 실험은 노동시간 단축에도 몰입도와 집중력이 향상되면서 생산성 향상이 나타났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단편적으로 이뤄지던 주4일제 시도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확대와 사무실 근무 기피라는 현상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력 확보를 위해 급여 인상 외에 근무시간 단축 등을 통한 삶의 질 보장이 선호되고 있다. 1930년대 케인스가 꿈꾸던 100년 후 ‘주당 15시간 근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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