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50년전 수준 구매력”..日엔화가 루블화만큼 빠지는 이유는?

달러화와 엔화 /사진=뉴스1

15일 일본 엔화는 달러당 126.65엔까지 가치가 떨어져 이틀 만에 저점을 새로 찍었다. 약 20년 만의 최저치다. 엔화 가치는 지난달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경제의 힘이 쇠퇴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엔화 가치 급락, 루블화 하락에 육박…일본 ‘경제의 힘’ 떨어져

15일 아사히신문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는 세계 60개국 물가와 교역 비중을 반영해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 2월의 수치는 66.54로, 50년 전인 1972년 2월 이후 최저치다. 그만큼 엔화로 해외에서 물건을 살 때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다.

최근 엔화 가치의 급락은 미국이 3월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 직접적인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일본은 금리를 낮게 억제하는 금융완화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고 엔을 파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들어 지난 14일까지의 달러 대비 엔화 하락률은 8.6%에 이르고 있다. 같은 기간 유로화 하락율은 3.4%, 영국의 파운드는 2.5%에 그쳐 큰 격차가 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은 러시아의 하락률 9.8%에 더 가깝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경기 침체와 코로나에서의 더딘 회복세를 엔저의 요인으로 꼽는다. 미국과 영국 등의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코로나화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금리 인상 및 긴축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 또한 회복세의 반영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일본은행이 2013년부터 경제성장을 위해 이례적인 대규모 금융완화를 하고 있지만, 2013년 0.9%였던 잠재 성장률이 코로나 전인 2019년 0.4%로 하락해 2021년에도 0.5%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미즈호 은행 관계자는 “성장력이 낮은 엔은 자산으로서 매력이 없다”며 “아직 완화를 계속하고 있는 나라의 통화는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도쿄=AP/뉴시스] 2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일본 경제구조 변화도 주요인…”당국 속수무책” 지적도

일본 경제구조의 변화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은 과거 자국 내에서 제조한 제품을 해외에 수출해 거액의 무역흑자를 벌었다. 수출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국내에서 쓰는 엔화로 바꾸기 위해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여 왔기 때문에 엔고로 가기 쉬운 구조였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더 많은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엔의 수요가 한층 줄어들었다. 국제무역투자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직접투자 잔액은 2019년 1위인 미국의 40분의 1 이하다. 성장을 전망하기 어려운 일본에 투자금도 모여들지 않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는 국내 고물가로 이어지는 엔화 약세에 경계심을 높이고 있지만, 경제의 기초 여건을 바탕으로 환율이 바뀌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사실상 속수무책인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은 “현재의 강력한 금융완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혀 엔화 가치가 더 추락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엔저 현상을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달러·엔 환율이 150엔까지 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엔화의 가치가 지금보다 20%가량 더 떨어진다는 얘기다.

박진영 기자 jy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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