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퀴퍼 없는 지난 3년, 잘 지냈나요? 다시 무지개 광장이 열렸다

16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3년 만에 무지개 광장이 다시 열렸다. 간간이 비가 내렸지만, 서울광장을 향해 모여드는 인파는 높은 습도 때문에 찜통 같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부채, 망토, 스티커 타투, 팔찌, 마스크, 우산, 인형, 가방 등등 무지개로 된 온갖 물건이 광장을 물들였다. 몇몇 참가자들은 ‘무지개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온몸을 무지개로 치장했다.

성소수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자긍심을 드러내는 뽐내는 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16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작했다. 광장을 빙 둘러 성소수자 단체, 여성·시민단체, 각국 대사관, 기업 등이 차린 80여개 부스가 차려졌다. 각 부스 참가 단위는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하나둘 모여들어 부스를 둘러보던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성별·성정체성·성적지향·세대·종교가 저마다 달랐지만 성소수자인 자신을 긍정하고, 이웃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는 서울광장.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성소수자들은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당당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정은(20)씨는 “고등학생이던 2018년 퀴어퍼레이드에 처음으로 왔다. 그때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며 벅찬 감정을 느꼈다”며 “(무지개색 옷을 입어)좀 튀어 보이는데 도착하기 전 지하철에서는 주위 시선에 괜히 위축되는 느낌이었는데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어깨가 절로 펴졌다.(웃음)”고 했다. 이정은씨와 함께 온 황서연씨는 “미디어에서 퀴퍼를 접했을 땐 과격하고 선정적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전혀 다른 걸 알았다. 다른 사람도 편견을 깨고 나오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서울시청 광장 맞은편 서울시의회 앞 도로에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동성애 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가 동시에 열렸다. 이 행사장 주변에 종교단체 등이 ‘동성애 반대’와 같은 문구를 넣은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러나 서울광장에서 다른 종교인들은 성소수자를 배척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광장은 찾은 해도 스님은 “축제라면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 어울리는 자리다. 이제까지 성소수자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배척받을 건 없다고 본다. 불교 사상 자체가 차별과 배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라고 했다. 신학대를 다니는 ㄱ(24)씨는 “진보적인 종파에 속하는 신학대인데도 점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진다”며 “하나님 생각의 본질은 누구나 평등하고 그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대전, 대구 등 지역 곳곳에서 새벽에 출발해 올라온 참가자들은 이런 축제의 장이 더 많은 곳에서 열리길 바랐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오은지(51)씨는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어 좋다.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 “대구에서 올라왔는데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자유롭게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전퀴어네트워크 소속 박선우(20)씨는 “세종시에 사는 동료와 함께 오느라 새벽 6시반에 출발해서 왔다. 대전에는 퀴어퍼레이드가 아직 없는데, 지역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더욱 활발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성소수자는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며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많은 관심이 없었다. 혐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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