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7시간짜리 필리버스터..여야 번갈아 나서 ‘검수완박’ 막판 여론전

[경향신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일명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전 첫번째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여야는 27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두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번갈아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발언대에 서며 공세를 주고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단독처리 수순에 들어가면서 서로 막판 여론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셀프방탄법” “입법독주”라고 날을 세웠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여야 합의를 뒤엎은 점을 집중 부각하며 반격했다. 민주당이 법안처리 속도전에 나선 전날부터 이틀째 종일 국회에 전운이 고조됐다.

이날 오후 5시 소집된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하자 국민의힘은 미리 예고했던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임시국회 회기를 이날 자정 끝내고 오는 30일 다시 회기를 여는 ‘회기 쪼개기’ 전략을 가동해, 필리버스터는 첫 토론자가 나선 오후5시11분을 기점으로 6시간 49분으로 제한됐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는 회기가 끝나면 자동 종료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첫 토론자로 나섰다. 권 원내대표는 오후7시14분까지 2시간 3분동안 발언을 이어가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뒤 사흘만에 파기를 선언한만큼 합의 파기의 이유와 검수완박 법안 문제점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권 원내대표는 “입법폭주를 막기 위해 중재안 협상에 응했지만 중재안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면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협상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책임있는 정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어이 검수완박법을 통과시키면 이는 셀프방탄법, 입법독주라는 비판을 받고 국민을 배신하는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민주당을 향해 “극성스러운 문자 폭탄, 편향된 정치 스피커들의 압박, 당내 극단주의자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영의 빗장을 풀고 민심의 광장으로 나와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권 원내대표와 함께 김웅, 김형동, 김미애 의원 등을 토론자에 배정했다. 필리버스터 시간이 제한적인만큼 법조인 출신 의원들을 내세워 법안의 문제점을 효율적으로 부각하려는 전략이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법안은 ‘검수완박’이 아니라 수사, 기소의 분리”라며 “검찰이 수사권력이 아니라 수사 통제권력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우리 검찰개혁의 노선”이라고 법안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님과 권성동 원내대표님이 두 분의 합의는 정말 잘한 합의고 박병석 의장님께 금목걸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다”며 기존 여야 합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종일 국회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여야 원내대표는 막판 회동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연좌농성을 시작하는 등 본회의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후2시5분쯤 시작된 박병석 의장 주재 양당 원내대표 회동은 50여분만에 성과없이 끝났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에게 (양당) 합의를 정면으로 파기한 것에 대한 반성과 이에 따른 대국민 사과와 민주당에 공개사과를 즉각 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더이상 검수완박 관련 조정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회동 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박 의장은 오후 5시 국회 본회의를 소집했다.

막판 회동 결렬은 전날 예고된 수순이었다. 민주당이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법안 처리에 돌입하자 국민의힘이 강경 반발하며 극한 대치가 이뤄졌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날 오후 11시30분쯤 손팻말을 든 채 안건조정위가 예정된 국회 본관 4층 법사위 회의실로 들어섰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취재진에 안건조정위 회의를 공개하자며 회의장 문을 여는 과정에서 취재진, 국회 방호처 직원, 민주당 의원, 국민의힘 의원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법사위 사무실 내 가림막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들고 있던 손팻말은 찢어졌다. 곳곳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민주당은 오후 11시46분 안건조정위를 개의해 8분만인 11시54분 의결을 마쳤다.

법안들은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일사천리로 의결됐다. 민주당 소속 박광온 법사위원장은 27일 0시1분 회의 속개를 선언했고, 8분 뒤인 0시9분 의사봉을 두드리며 법안 통과를 알렸다. 기립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표결에서 민주당 소속 위원 10명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법안 통과에 찬성했다.

법안 통과 전후 양당 의원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고 욕설했으며 몸을 서로 밀쳤다. 안건조정위 산회 직후 법사위 전체회의에 앞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박 위원장의 회의장 입장을 막았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비어있는 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뭐하는 짓이냐. 위원장 들어오는 걸 막는 게 어디있냐”고 소리를 질렀다. “술 먹고 행패부리지 마라”, “죽여버리겠다” 등 험한 말도 난무했다. 일부 여야 의원 간에는 의사봉 쟁탈전이 벌어졌다. 개정안이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빠르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복도 앞에 나란히 서서 손팻말을 들고 취재진을 상대로 법안 처리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유정인·유설희·조문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