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가 과거 정부보다 대폭 줄어든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최종 국정과제는 30개를 목표로 하고 있고, 50개를 넘기지 않을 것”라며 “정권 중·말기에 슬그머니 사라질 과제는 최대한 줄이고, 무조건 이행해야 할 핵심 과제를 선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문재인 정부처럼 국정 과제를 나열식으로 발표할 생각은 없다”며 “100개 중 채 50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정부도 있는데, 30대 과제 등을 설정한 뒤 집중해서 약속을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정과제는 정부가 임기 동안 추진할 주요 정책 및 현안을 뜻한다. 새 정부의 특징과 기조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지침서’로 평가받는다. 과거 인수위와 정부에서는 의욕적으로 국정과제를 내놨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는 인수위에서 무려 193개의 과제를 제시한 뒤 그해 10월 녹색성장, 식품안전 등을 앞세운 100대 과제를 선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생애주기별 복지 등 140대 과제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도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해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1번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부동산값 폭등과 취업난 사태 속에 ‘말뿐인 국정과제’가 상당히 많았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 ‘서민이 안심하고 사는 주거 환경 조성’,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남북 경제통일 구현’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인수위가 과거 정부보다 국정과제를 대폭 줄이겠다고 나선 것은 윤석열 당선인의 ‘특별 지시’ 때문이라고 한다. 복수의 인수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최근 비공개 인수위 회의에서 “처음에는 국정과제로 나라를 뒤집어엎을 것처럼 하고서는 정작 실현이 안 된 것이 한둘이냐”며 ”작지만 현실 가능한 과제부터 추진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히 할 수 있는 과제부터 이행하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더 큰 과제도 맡길 것”이라고도 덧붙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약속 이행’을 강조하는 윤 당선인의 스타일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부터, 최근 제주 4·3 추념식 방문 등 대선 후보 시절에 한 약속을 지키는 이미지를 부각해왔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거창한 국정과제를 늘어놓기만 해서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윤 당선인의 기본 인식”이라며 “코로나 19 사태 등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지면 국정과제와 우선순위가 언제든 유연하게 변동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과제를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구도가 국정 과제 최소화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정과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더불어민주당의 벽에 막히면 외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추진 가능한 국정과제부터 완료해 놓고, 향후 추가 과제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추진한다면 야당(민주당) 설득도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측에 따르면 국정과제 발표는 100여개의 과제를 나열해 목표 및 주요 내용을 짧게 덧붙이는 과거 방식이 아니라, 분과별로 3~5개의 핵심 과제를 선정한 뒤 상세한 이행 계획을 덧붙이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인수위 관계자는 “홍보용 나열이 아니라 왜 과제를 선정했는지, 구체적 이행 계획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명기할 것”이라며 “당장 완료될 수 없지만 중·장기적인 과제로 꼭 추진할 사안은 따로 분류해 중장기 과제로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인수위는 각 분과의 국정과제를 취합해 안 위원장에게 1차 보고했다. 코로나19 사태 대응 및 주택 공급 확대, 경제 역동성 회복, 노동·연금 개혁, 지역 균형 발전 방안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고 한다. 인수위 관계자는 “러프(rough·거친)한 수준으로 분과별 국정과제를 취합한 상태”라며 “18일까지는 선별작업 등이 완료될 것”이라고 전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