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건축을 넘나드는 강예린, 이치훈(上)



[효효아키텍트-93] 건축사사무소 SoA(Society of Architecture)의 강예린, 이치훈 건축가는, 두 사람의 공동 설계를 영화의 공동 시나리오 작업에 비유했다. 두 사람 중 누구든 첫 스케치나 모티프가 되는 특징적 공간 표현에서 출발하면,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한 문서(원고)에 접근하듯이 설계 개념화 작업을 하고 도면이나 시스템화는 협업으로 진행한다.

강예린은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다. 공간에 기반한 사람들의 삶을 배웠다. 도시, 입지, 경관, 장소 등은 건축과 동일한 주제였으며 언어가 같았다. 건축을 이해하는 배경 지식을 쌓은 셈이다. ‘장소’와 같은 공간 환경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반대로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바꾸는 공간에 대해 상대적으로 익숙했다. 약 4년간 국내외 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거쳤다. 이치훈 또한 비슷한 기간만큼 국내 대형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대형사무소는 설계 단계가 세분화돼 대부분 기획 수준에서 아이디어만 소진돼 작품으로 구현하고 싶은 자신의 열망에 미치지 못했다.

문화역 서울 284에 설치 전시한 <인생사용법-Valet Dymaxion>(2012)은, ‘도시적 발레파킹’의 적나라한 현상을 보여준다. 강남의 발레파킹은 빈 땅에 필요할 때마다 주차하는 일종의 의자뺏기 놀이다. 서울 강남 신사동 일명 가로수길을 사례로 선정했다. 늘어나는 핫한 레스토랑과 카페의 과밀성장, 강남의 격자 구조, 인근 아파트 및 상가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 확대, 대형 교회와의 주차 다툼, 시간대별 잉여 공간, 일방통행로 등의 변수는 ‘발레 아저씨’들의 동선 중심의 지도를 만들어냈고, 도시와 건축이 해결하지 못하는 주차를 식사 시간마저 줄인 싼 인건비의 인력들이 투입돼 가로수길 경제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야 시간대 도심과 베드타운을 연결하는 대리운전과는 다른 행태의 지리경제적 현상이다.

인생사용법-Valet Dymaxion / 사진제공 =에스오에이

리서치 프로젝트인 <도서관 산책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게 ‘도서관의 접근성’이었다. 토지이용계획원에서 전국 도서관 입지를 확인하니 공원 녹지가 대부분이었다. 입지의 특성이 도서관 형태에 영향을 미쳐 전국 도서관이 대동소이했다. 내부는 하나의 도서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똑같았다. 도서관은 사회문화적인 실체이다. 건축가는 그 공간이 마땅히 지녀야 하는 사회적 가치, 그 장소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건축물에 담아야 한다. 도서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두 건축가는 2012년 이탈리아국립현대미술관(MAXXI)을 비롯 40여 회 전시, 공공미술 및 파빌리온(가설물) 작업 10회, 기타 전시기획 및 퍼포먼스 등 건축 이외의 활동 스펙트럼이 넓다.

일반 특이행동: 4개의 퍼포먼스 / 사진제공=신경섭 ‘일반 특이행동: 4개의 퍼포먼스'(2013)는 무용수들과 몸과 건축의 사이에 존재하는 ‘옷’이라는 제3의 매개체를 설정했다. 굳기 전의 젤라틴을 몸에 입고 움직이는 동안 표면은 몸의 형상이 되고 움직임에 주름이 잡히는 등 몸과 옷의 중간 단계가 되고, 굳어진 젤라틴은 더 이상 옷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단단한 소형 파빌리온이 된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몸도, 옷도 건축도 아닌 세 가지의 상태로 계속 변이하는 과정을 관찰하게끔 구성됐다.

이들이 독립사무소를 세운뒤 첫 작품은, 물성을 가진 건축이 아닌 미술 장르에 해당하는 설치 작품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커다란 갈대발이 공중에 걸려 있는 듯한 ‘지붕 감각'(Roof Sentiment. 2015)은 여름철 미술관 마당에 물리적으로 그늘을 제공했고, 그늘 아래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을 창출했다.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었던 두 건축가는 미술관 방문객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미술관 주변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한옥 지붕군이 눈에 띄었다. 건축적으로 전시 장소의 맥락을 고려하고 건축물 요소를 극단적으로 분해, 전혀 건축적이지 않은 재료인 갈대로 엮은 발을 생각해낸 것이다.

지붕 감각 / 사진제공=신경섭 이러한 미술적 작업은 본격적으로 추진할 건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며, 실제 적용될 것이다. 건축 모티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시 공간, 가구디자인, 도서관의 관계를 <미묘한 삼각관계>(2015) 타이틀로 서울 시립미술관 내 50㎡ 공간에 두 건축가는 당시 파트너였던 이재원과 함께 전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는 아시아 삼국의 미술교류와 현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됐다. 아카이브는 자료의 전시와 함께, 검색과 자료 열람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라운지의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책의 표지가 직접 독자를 맞이하고, 각 연대별로 자료의 분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의 진열이 곧 연대별 자료 분포의 그래프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이 그래프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자료 검색과 구독을 입체화된 공간의 경험으로 전환한다.

성 평등 도서관, 여기 / 사진제공=신경섭

1005㎡ 공간에서 펼쳐진 ‘성 평등 도서관, 여기'(2015)는 라키비움(library+archive+museum)이다. 즉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적극적으로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책과 자료를 큐레이팅하는 성격을 띤다. 공간을 계획하면서 중점에 둔 것도, 책과 자료가 ‘보여지는 방식’이다. 도서관 가운데서 사방으로 조금씩 자라나는 책장은 의자가 되고, 책상이 되고, 전시대가 되고, 벽 서가가 되고, 혹은 책장끼리 모둠을 이뤄 가운데에 책 읽는 자리를 둔다. 벽을 치고,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인 책을 읽는 가구가 조금씩 모여서 공간을 모둠해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계획했다. 이어지는 책장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들이 일련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던진 메시지는, “미디어가 가야 할 공간이 어디냐?”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마지막 남은 공공 공간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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