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김민정과 ‘한바다’ 박은빈의 어긋난 평행이론

[뉴스엔 김범석 전문기자]

신입 기자 시절 ‘연예인 얼굴은 따로 있구나’를 실감케 한 이는 김민정이었다. 명필름이 마련한 영화 ‘버스, 정류장’(02) 인터뷰 때 그녀를 처음 봤으니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했다. CD에 가려지는 작은 얼굴과 비현실적인 비율의 큰 눈망울은 순정만화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아역 배우 출신답게 언변은 또 얼마나 단정하고 정확했는지 모른다. ‘고화질 TV가 여배우들의 적’이라며 파안대소하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뭐든 또박또박 소신 발언하고 적절한 비유와 유머, 상대의 흥과 기분을 돋워주려는 과하지 않은 리액션까지. 촬영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당시 감정이 불현듯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힐 때는 그녀의 연기에 임하는 진심을 훔쳐본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보다 나이 많은 감독, 선생님들과 일하며 익혔을 실전 예의범절과 처세가 그녀를 일찌감치 애늙은이, 눈치의 달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예쁘다는 칭찬과 연기 신동이라는 찬사만 듣진 않았다. 눈물 쏙 빠지는 꾸중과 충격요법, 또래들과의 비교도 아역 연기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스트레스성 성장통이었을 거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봉합되길 반복하면서 김민정은 모두의 바람대로 잘 자란 아역 출신 연기자의 대명사가 됐다.

매주 수목을 ‘우요일’로 만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을 보면서 어린 시절 김민정이 떠올랐다. 엄마 손에 이끌려 광고, 화보를 찍고 여의도 방송국과 용인 민속촌을 다니던 꼬꼬마들은 권모술수가 판치는 혹독한 연예계에서 용케 살아남았고, 힐링과 감동을 주는 어엿한 성인 연기자로 성장했다. 2015년부터 나무엑터스 소속인 박은빈처럼 김민정도 한때 이곳과 한 팀이었다. 김종도 대표를 ‘종도 삼촌’으로 부르며 10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고 연기 나이테를 늘려갔으니 세 사람의 인연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갈 길을 먼저 걷고 손 내밀어주는 선배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행운이자 안식이다. ‘말 안 해도 네 마음 다 안다’라며 지긋이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박은빈에게 김민정은 그런 나침반 선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은 둘의 평행이론은 현재 다소 어긋나있다.

극 중 대형 로펌 ‘한바다’에서 다양한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난생 처음 심장이 요동치는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는 박은빈과 달리 김민정은 현실 소송 중이다. 전 소속사와 갈등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의 조력을 받으며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박은빈은 한바다를 통해 자기 효능감과 성장을 경험하는 데 반해 김민정은 태평양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니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아이러니하다.

겉으로 드러난 몇몇 사실 외에 김민정이 전 소속사와 어떤 실타래가 얼마나 엉켜있는지 정확히 알 순 없다. 누가 진실을 은폐하는지는 재판부가 가려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김민정처럼 뛰어나고 재능 많은 연기자가 있어야 할 곳은 법정이 아니라 촬영 현장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18) ‘악마 판사’(21)에서 활약했지만, 그녀의 영화 필모는 이준익 감독의 ‘키드캅’(93) 이후 ‘밤의 여왕’(13)에서 멈춰져 있다. 연기자에게 시간은 두 배로 값진데 시간과 재능을 동시에 허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진=김민정, 박은빈/뉴스엔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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