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손편지 3장, ‘네잎 클로버 그림’에 숨겨진 의미

[이준목 기자]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흉악범들은 거창한 정신세계나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보다 더 약해 보이는 상대를 노려 분풀이를 하고, 자신의 죄악을 남 탓 세상 탓으로 전가하려는 비겁한 악당들이 대부분이다. 두려움을 한 겹 벗겨내고 보면, 악의 실체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나약하고 지질하다.

16일 방송된 채널A 범죄 예능 <블랙: 악마를 보았다>에는 ‘사이코패스’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감독 장진, 배우 최귀화, 프로파일러 권일용, 그리고 배우 한승연이 출연하여 유영철이 옥중에서 직접 작성한 세 통의 자필 편지를 통해 악의 비뚤어진 심리를 분석했다.

출연자들은 유영철의 편지를 보자마자 내용을 읽기도 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편지는 마치 타자기로 쓴 것처럼 글씨가 흐트러지거나 고쳐 쓴 흔적 하나 없이 반듯했다. 한승연은 “글씨만 봐도 느낌이 이상하다”며 섬뜩해했다. 장진은 “만일 누군가에게 이렇게 잘 쓴 글씨체의 편지를 받으면 호기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편지를 그(유영철)에게 받았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 공포감이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유영철은 만화가 수준의 상당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편지에도 하단에 초록색으로 칠한 네잎클로버 그림을 직접 그려놓았다. 유영철을 수사하며 직접 여러 번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권일용은 “글씨체만 봐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권일용은 유영철에게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약 장애가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밝혔다. “유영철은 남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성향”이라고 분석하며 네잎 클로버에 녹색을 칠한 것도 “자신이 색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제작진에게 색을 칠한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과거를 지워버리는 태도가 변함이 없다는 게 권일용의 분석이었다.

유영철이 제작진에 쓴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을까. 편지에서 유영철은 ‘자신이 사이코패스로 명명되는 건 오류라고 본다’고 주장하며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스스로를 진단하기도 했다. ’17년 전 저의 자백이 20여 명에서 멈췄던 건 언론의 과잉보도 때문’이라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권일용은 유영철을 회상하며 인상적인 기억으로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평했다. 본인을 스스로 진단할 만큼 공부를 많이 했음을 어필한 것이다. 권일용이 유영철을 조사할 때도 말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끊지 않으면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려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고.

유영철은 편지에서 ‘권일용 같은 프로파일러를 만난 사실이 일체 없다’고 주장했다. 의아해하는 출연자들에게 권일용은 미소를 지으며 “이런 거짓말이 바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라고 답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거짓말 한 마디로 듣는 이들에게 의구심을 가지게 하고, 지목된 상대는 반응(심부름, 입증, 해명 등)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사이코패스가 상대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수법이라는 것.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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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이 편지와 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그의 범행을 재구성한 드라마가 공개됐다. 유영철은 연쇄살인 전에는 미성년자 강간 및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 경력이 있었다. 2003년 9월 출소 후 2주 만에 주택을 침입하며 살인 사건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영철은 첫 범행 이후 2~3주 간격으로 비슷한 범행을 이어가며 총 네 번의 사건을 저질러 8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은 대형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쳐서 피해자들이 저항할 틈도 없이 제압하는 잔혹한 수법을 선택했다. 범행도구를 골라 사전에 동물을 상대로 시뮬레이션까지 할 정도로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였다. 유영철이 고른 범행대상은 대부분 힘없는 노약자나 여성이었고, 담장에 가려지거나 보안장치가 없어서 범행이 용이한 집을 골랐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CCTV에 찍힌 뒷모습을 바탕으로 공개 수배에 돌입했다. 범인을 찾기에는 빈약한 자료일 수도 있지만, 범인인 유영철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공개 수배되고 어딘가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CCTV에 찍힐 수 있다는 자각만으로 위협을 느낄 수 있다는 효과를 노린 것.

유영철은 잠시 범행을 멈췄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새로운 범행 수법과 대상을 찾아냈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여성들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욕실에서 살해하고 시신 훼손, 유기까지 저지른 것.

유영철은 범행 장소인 욕실에 대해 “욕실의 문턱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가르는 경계선”이라고 표현하며 마치 본인이 타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 듯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고. 유영철이 범행 수법과 대상을 바꾼 것은 외부 저택을 침입하는 범행보다 위험부담이 적고, 의심받지 않을 만한 대상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범행을 저지르기 수월해지기 때문이었던 것.

또한 유영철은 자신의 집에서 시신을 훼손할 때마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영화 ‘1492년 콜럼버스’의 OST인 ‘The Conquest of Paradise’를 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으려는 의미와 함께,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서 극복하기 위하여 음악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장진은 “시신 훼손을 신대륙을 가는 느낌과 동일시한 것이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스무 명을 살해한 사람의 이유를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가”라고 평했다.

유영철은 어쩌다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것일까. 유영철에게는 두 여자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22살에 결혼했으나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고 아들의 양육권도 빼앗겼다. 또한 출소 이후에 만난 동거녀와도 전과와 이혼 사실을 숨긴 것이 들통나면서 헤어지게 됐다.

하지만 유영철은 이를 자신의 잘못이 아닌 여자들의 ‘배신’으로 규정했다.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직후에는 자신이 수감된 방에 ‘출소하면 1000명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적어놨다고. 또한 유영철의 피해자 중에 유난히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피해자의 경우 “동거녀와 이름이 같아서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한승연은 단지 이혼과 이별이 갑자기 대량살인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데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일용은 “이혼은 동기가 아닌 범행의 촉발 요인”이라고 분석하며 “유영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살인에 대한 환상이 그 상황으로 인하여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영철이 초반 교회 근처에 거주하는 부유층을 집중적으로 노려서 살해한 의도는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영철은 자신의 전 부인과 아들도 살해하려고 했으나, 아들의 양육을 생각해 범행을 포기했다. 자기중심적인 판단에 따라 원한의 대상이 아닌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 화풀이를 하는 유영철의 이기적이고 모순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장진은 “나는 가난해서 아내에게 버림받았다. 날 가난하게 만든 이 사회가 문제다. 그래서 이 사회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라며 유영철의 심리를 분석했다. 한승연은 “본인을 영웅이나 비운의 주인공 같은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영철은 편지에서도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 경험을 거론하며 ‘폭력과 학대의 숙주인 저항 감정을 먹고 자랐다, 가정환경이 나를 범죄자로 만들었다’고 변명을 일삼았다.

권일용은 “모든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자신을 포장하려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최귀화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가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어이없어했다. 장진은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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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은 언론과 대중 앞에서 “부유층은 각성하고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을 남겨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유영철은 자신의 범행을 마치 사회 정의처럼 연관 지어 포장했지만, 범행하기 쉽거나(부유층 노인), 신고 확률이 낮은 사람들(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을 노려서 ‘살인을 즐긴 것’에 불과했다. 유영철의 편지는 본인이 만들어낸 명분을 지금까지도 주장하고 있는 것. 권일용은 범죄자들의 공통적 특성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주장한다”며 이를 심리학적으로 ‘투사’의 방어기제라고 설명했다.

유영철은 범행을 저지르고 시신을 땅에 묻어 유기하면서 같은 장소와 중복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병뚜껑으로 표시를 해놨다. “같은 곳을 파면 소모적이니까”라는 유영철의 답변을 회상하며 권일용은 “자기중심적이 삶의 면모가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또한 유영철은 시신을 굳이 유기-훼손한 이유에 대해서는 “시신이라도 누워있으면 좋을 만큼 나는 외로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권일용은 이를 두고 유영철이 극단적 감정을 넘나드는 ‘경계선 성격 장애’에 가까운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영철은 진술과 편지에서 한결같이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리했다. 최귀화는 유영철의 편지를 읽고 난 후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고 꾸며낸 시나리오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길고 잔혹했던 유영철의 범행은 여성들이 연이어 실종되는 것에 의심을 품은 업주의 신고로 잠복하던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살인이 아닌 납치 의심범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지만 유영철은 놀랍게도 자신의 살인 행각을 스스로 ‘자백’했다.

증거가 없어서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었지만 유영철은 수사를 받던 중 고위 경찰 간부의 공무원 직급을 묻고 “그 정도 급은 되어야 나와 이야기할 수 있다”며 자신의 저지른 범행을 자랑하려는 오만한 심리를 드러냈다고.

유영철 체포 이후 심리학계에서도 이목이 집중됐다. 경찰 프로파일러와 심리학 전문가들이 모여서 분석 결과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으로 정리됐다.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살인, 방화, 사체 손괴, 공무원 자격 사칭, 사체 유기, 절도 등의 혐의로 2004년 12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장진은 유영철의 편지와 범죄행각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사라져도 될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사건을 되짚어 보며 소름이 돋았다. 편지를 보면 오랜 시간 감옥에 있으면서도 유영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이어 “만일 그가 그날 잡히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전했다.

유영철에게 당한 희생자 중에는 아직까지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도, 고통을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유족도 있다. 희대의 연쇄살인마, 잔혹한 사이코패스, 대중매체 속 인기 캐릭터로 등장하는 킬러의 모습 등은, 어쩌면 유영철 자신이 만들어낸,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었던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부자와 여성에 대한 분노를 내세웠지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약한 살인 충동과 비겁한 살인 방식은 오히려 유영철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유영철에게 기억해야 할 ‘단 하나의 이미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악의 ‘비겁함’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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