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배당주의 시대 왔나..역대급 시가배당률에 중간배당도 ‘짭짤’

직장인 오 모 씨(50)는 지난해 말 여윳돈 1억원을 ‘NH투자증권 우선주’에 투자했다. 증권사 순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증권사 배당률이 쏠쏠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해 연말 주당배당금이 1100원이었다. 12월 배당 기준일 종가 기준 시가배당률은 8.7%. 15.4% 배당세를 제외하고도 700만원 넘는 돈이 입금됐다. 오 씨의 투자 종목 주가가 죄다 내리는 상황에서 ‘단비 같은’ 수익이었다. 50대로 들어선 그는 정기적인 배당주 매입으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리라 마음먹었다. 오 씨는 “NH투자증권은 대주주인 NH금융지주 지분율이 높아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배당을 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주가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노후자금 투자처로 이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올해 증권사 수익이 지난해보다 낮아지겠지만 시가배당률이 5% 안팎은 나오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금리 인상 ‘빅스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등 국내외 경제 상황이 복잡해졌다. 국내 증시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투자자 고민도 깊어졌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맛봤던 대세 상승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파란불(마이너스)’ 종목으로 넘쳐나는 하락장에서 주목받는 투자 키워드가 배당이다.

지난 2월 효성티앤씨는 보통주 1주당 배당금 5만원을 결정했다. 지난해 5000원 대비 10배 증가한 규모다. ‘폭탄 배당’에 주주들은 환호했다. 효성티앤씨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라면 배당금만 1000만원(세전)을 받는다. 신용인증·B2B 전자상거래 지원 서비스기업 이크레더블은 더 파격적이었다. 주당배당금은 2720원으로 지난해 12월 배당 기준일 종가 기준 시가배당률이 13.5%에 달한다. 동양생명(9%), HD현대(8.99%) 등의 시가배당률도 최상위권 수준. 이 밖에 증권 계열 한국투자금융지주 우선주, LX인터내셔널, 삼양옵틱스, 금호석유화학 우선주, 리드코프도 8%대 배당을 결의했다.

코스피 전체 배당총액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지난해 26조2000억원으로 전년(20조원) 대비 30.5% 증가했다(한국거래소 자료). 2021년도 기준 보통주와 우선주의 평균 시가배당률은 2.32%, 2.65%로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만기 국고채(0.92%)와 정기예금 수익률(1.19%)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코스피 배당 기업은 556개사로 전년비 5.1% 늘었다. 이 가운데 92%가 연속배당을 실시하며 주주환원정책 강화 트렌드가 본격화했다는 점을 보여줬다.

미국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경제가 불안하다. 국내 주식도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배당주에 눈독 들이는 투자자가 늘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코스피지수. (연합뉴스)
▶동학개미 목소리 힘 실려

분기·차등배당도 늘어나

자사주 소각 여부도 중요

그간 한국 주식 시장이 오르지 못하는 이유로 ‘짠물 배당’이 단골손님처럼 언급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배당 성향은 G20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배당을 중시하는 외국인은 글로벌 위기 국면만 닥치면 한국 주식 먼저 팔아치우기에 바빴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를 해소한 건 어쩌면 동학개미였다. 주식 투자 인구가 급격히 높아지며 이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기업 주가가 요동치면 소액주주들이 앞장서 주주친화정책을 요구했다. 실제 지난 2월 분자진단 헬스케어 전문기업 랩지노믹스 관련해서는 무상증자 200%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기업이 주주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되며 배당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셈이다.

최근 하락장에서 동학개미들은 분기배당에도 관심을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결산배당을 실시한 상장사는 1094곳. 전년과 비교해 결산배당을 실시한 업체는 23곳 줄었다. 대신 분기·중간배당 등 다양한 방식의 배당을 도입하는 업체는 증가했다. 지난해 분기배당을 실시한 업체는 코스피에서 46곳, 코스닥에서 17곳이었다. 전년과 비교해 모두 16곳 늘었다. 지난해 중간배당을 실시한 업체는 코스피 15곳, 코스닥이 7곳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도 분기배당 등을 도입한 기업은 늘어나는 추세다. KB금융은 금융사 중 처음으로 분기배당 정례화를 결정했다. 분기배당금은 보통주 1주당 500원이다. 지난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분기배당을 실시한 신한금융지주 역시 보통주 1주당 400원의 분기배당을 결의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중간배당 기준일을 명시하기로 정관을 바꿨다. 차등배당을 실시하는 업체가 등장한 것도 특징이다. 차등배당이란 대주주에는 배당률을 낮춰 세금 부담을 낮추고, 소액주주에게는 배당률을 높이는 제도다. 지난 2020년 차등배당을 실시한 업체가 한 곳도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26곳이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는 최근 5년간 배당금 성장률이 높았던 우선주 종목 위주로 올해 배당금 상승폭이 확대될 것이라 전망한다. 박은석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5년 동안 배당이 성장했던 우선주는 올해도 배당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배당 성장이 유력하고 배당 수익률 상승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우선주로 삼성전기우, 금호석유우, LG생활건강우, 한국금융지주우 등을 추천했다.

배당 성향이 높은 종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당 성향은 당기순이익 가운데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비율로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얼마만큼 주주들에게 돌려주는지를 나타낸다. 높은 배당 성향은 기업이 주주환원에 적극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에게 가장 많이 돌려준 회사는 쌍용C&E다. 지난해 말 기준 배당 성향이 118%에 달했다. 쌍용C&E는 2019년과 2020년에도 당기순이익의 162%, 160%를 배당으로 지급했다. 이어 한온시스템(62%), 제일기획(60%), KT&G(58%)가 이름을 올렸다. 삼성화재(45%), 삼성카드(44%), 삼성물산(42%), 삼성생명(36%), 삼성증권(35%) 등 삼성 그룹사들도 상위에 올랐다. NH투자증권(35%)은 증권사 중 가장 높은 배당 성향을 보였다. 박소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금리 상승은 기업이 창출할 미래 수익의 현재 가치를 낮게 만들기 때문에 성장주 주가에 부정적”이라며 “고배당주, 리츠 등 정기적으로 현금을 주는 인컴형 자산의 부활을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배당에 인색한 기업도 있다. 디지털 전환의 수혜로 이익이 급증한 빅테크 기업은 배당에 깐깐했다. 카카오가 지난해 지급한 배당금 총액은 229억원으로 배당 성향은 1.65%에 불과했다. 지난해 일본 라인과 Z홀딩스의 경영 통합에 따른 회계상 이익을 제외하고도 1조5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린 네이버는 762억원을 배당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배당도 중요하지만 ‘자사주 소각’ 여부도 중요한 투자 판단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고배당에도 주가가 부진하다면 잉여현금을 배당보다 자사주 소각에 쓰는 것이 주주에게 훨씬 이로운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ROE(자기자본수익률)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광욱 J&J자산운용 대표는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을 포함해 주주환원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주가도 탄탄하다”며 “올해처럼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면 배당을 많이 지급하거나 주가가 내렸을 때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기업은 방어력이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7호 (2022.05.04~2022.05.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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