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용산 집무실 앞 집회하려면, ‘이 공식’ 따라야 허가된다는데..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는 전국 환경단체 연합 네트워크인 한국환경회의 소속 세 단체와 연대해 오는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하려 했다. 10일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6개월 미룬 정부의 환경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최근 이 단체는 집회 대신 경찰에 사전 신고할 필요가 없는 기자회견으로 행사를 대체하기로 했다. 애초 많은 참가자들을 모아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는 집회를 열고자 했지만, 발언자 4명이 참가하는 소규모 기자회견으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뒤 경찰이 ‘집무실 앞 100m 이내’ 집회는 모두 금지 통고하는 방침을 고수하며 벌어지는 풍경이다. 법원의 문턱을 넘어야 집회를 할 수 있다 보니 최근 작은 규모의 단체들이 집회 신고 단계부터 위축되고 지레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5일 현재 집무실 앞 집회를 하려면 ‘집회신고 뒤 경찰 금지통고→변호사 선임 뒤 법원에 경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재판부 인용 결정’ 등의 ‘공식’을 따라야 한다. 지난달 11일부터 지난 3일까지 7번의 집회신고가 이 공식을 따라 허용됐다.

법적 절차를 밟기에 비용과 시간이 부담되는 소규모 단체일수록 집무실 앞 집회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양희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변호사 선임부터 부담이 돼서 변호사 없이 법원 절차를 밟아볼 생각에 다른 시민단체에도 문의해봤지만 어려울 거란 답변을 들었다. 비용 문제도 있고 절차도 복잡해 보여 결국 집회 신청을 접었다”고 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더라도 구호를 크게 외치거나 퍼포먼스를 하면 경찰이 집회로 보고 경고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돼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러다 보니 작은 단체들이 ‘집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앞서 집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큰 단체에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요즘 집회신고를 앞두고 법적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른 시민단체들의 문의를 꽤 받는다. 큰 단체는 경험이 있어 곧바로 법적 지원을 받아 소송까지 갈 여력이 있지만 집회나 경찰 대응 경험이 많지 않은 단체는 소송 비용과 법원의 결정 기간, 실제 집회 가능성을 두고 많이 당혹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참여연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지난달 21일, 집무실 건너편 전쟁기념관 앞 인도에서 ‘한미정상회담 대응행동’ 집회를 열었다.

집회와 관련해 공익소송을 대리해 온 서채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도 “공익법인의 도움 없이 단체들이 변호사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울 수 있고, 집회 예정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소송 준비까지 하면 시간도 빠듯해 부담이 클 것”이라며 “경찰 금지통고가 부당하다는 법원 결정이 계속 나오는데도 이를 존중하지 않고 금지통고 원칙을 유지하는 경찰의 문제가 크다”고 했다.

지난 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는 심문 기일을 열지 않고 ‘조국통일촉진대회 준비위원회’가 서울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경찰이 금지 통고한 집회들에 대해 법원이 집회를 허용한 7번째 결정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관저에 포함시켜 집회·시위의 절대적 금지 장소로 해석한다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위헌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대통령, 국민 고충 들어야…‘집무실 앞 집회금지’ 입법해도 위헌소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5305.html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