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매력 특별시’ ‘기회의 경기’.. 슬로건에 담긴 경제·민생·안전

‘민선 8기’ 시정·도정을 이끌 광역자치단체장 17명과 기초자치단체장 226명이 지난 1일 취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지방권력이 보수정당 중심으로 재편한 가운데 상당수 단체장은 경제와 일자리, 혁신을 슬로건에 담아 새 옷을 갈아입었다. 이들은 취임 후 첫 결재에서 향후 4년간 펼칠 정책의 청사진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슬로건과 1호 결재에 담긴 속내는?

15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대권 잠룡’으로 불리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동연 경기지사, 홍준표 대구시장은 민선 8기 슬로건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차별화했다. ‘약자’ ‘민생’ ‘파워’라는 핵심어에 대선주자로서 행보를 집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은 지역에서 보여주는 행정 성적표에 따라 차기 대선에서 입지가 달라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서 참배를 마친 뒤 작성한 방명록을 현충원 관계자가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연임에 성공한 오 시장은 민선 8기 슬로건으로 ‘동행·매력 특별시’를 내세웠다. 보궐로 시작한 지난 임기 때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을 강조한 것과 다른 행보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며 관련 조직 신설을 담은 조직개편안도 발표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효과를 강조한 셈이다.

그는 ‘매력 도시 서울’을 앞세워 디자인 서울 2.0 구상도 밝혔다. 민선 4·5기 때 세빛둥둥섬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랜드마크를 세우고, 시정철학에 디자인을 녹였듯이 안정적으로 디자인 정책을 재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김 지사는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를 새 슬로건으로 공개했다. 자신의 성격처럼 섬세하고 꼼꼼한 생활밀착형 정책을 통해 더 나은 미래와 변화를 이끌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도민에게 고른 기회를 제공하고 소통과 협치를 통해 혁신성장을 이루겠다는 의지도 반영했다. 정무직인 기존 평화부지사를 경제부지사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런 김 지사는 1호 결재로 ‘경기도 비상경제 대응조치 종합계획’을 택했다. 그는 “경기 침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도민의 삶을 보듬고 민생을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뒀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브랜드·시정 슬로건을 ‘파워풀 대구’로 통합했다. 이달 말까지 시의회 조례 개정을 거쳐 브랜드 슬로건 규정을 없애고 단일 슬로건을 채택할 방침이다. 대구시는 “‘파워풀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과 2·28 민주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시민 열정에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더해 대한민국 3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슬로건인 ‘컬러풀 대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잡음도 일었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변경에 앞서 조례 개정이나 시민 동의가 없었다”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시 안팎에서도 “섬유 패션의 도시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슬로건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맞느냐”는 반론과 “힘찬 변화를 위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찬성론이 맞서고 있다.
홍 시장은 1호 결재로는 시정 혁신을 뒷받침할 조직개편안을 택했다. 앞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혁신하겠다”고 예고해 공무원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경제·민생·안전이 화두… ‘전임자 그림자 지우기’ 논란도

다른 광역단체장들도 변화한 민심을 읽고 경제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정관료 출신인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슬로건을 재활용했다. 앞서 민선 6기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채택했던 구호다. 인천에선 산하 10곳 군·구 가운데 8곳이 슬로건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단체장이 연임에 성공한 2곳을 제외하면 모두 구호를 바꾼 셈이다.

새롭게 당선된 이장우 대전시장도 시정 슬로건을 ‘일류 경제도시 대전’으로 정하고 이달 초부터 관련 시설물 교체에 들어갔다. 이 시장은 “선거 때 약속한 것처럼 기업을 유치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1호 결재로 ‘국내 유망기업 4개사 투자협약’을 택했다.

이처럼 민선 8기에는 경기 침체와 고물가 등으로 유독 ’경제’를 강조하는 단체장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규제혁신전략’에 처음으로 서명하면서 슬로건인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김두겸 울산시장도 ‘전략적 투자유치 및 기업지원 계획’을 1호 결재로 택했다. 이 계획에는 대규모 투자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전략산업 육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 시장이 내세운 구호는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이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추진’에 서명하면서 민선 8기를 시작했다. 충주·대청호 등 도내 757개 호수와 저수지, 유적지 등을 연계해 국내 최대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김 지사는 도정 목표를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로 정했다. 인구 200만 시대 진입과 질 좋은 일자리 10만개 창출, 충북경제(GRDP) 100조원 시대를 준비하자는 뜻이다.
김태흠 충남지사의 1호 결재도 대규모 경제 프로젝트로 귀결됐다. ‘베이밸리 메가시티 건설’에 서명하면서 천안·아산·당진 등 충남 북부와 경기 남부를 잇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단지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슬로건은 ‘힘쎈 충남, 대한민국의 힘’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강조했다. 채택 과정에서 비표준어 논란이 일었지만, 전문가 의견을 거쳐 확정됐다.

일부 단체장들은 산업 유치에 앞서 민생과 안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경제 위기 긴급 대응을 위한 지방 공공요금 동결’을 첫 결재로 택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고유가·고물가 민생 100일 대책’을 내세웠다.

김관영 전북지사와 유정복 인천시장은 1호 결재로 소방공무원 임용장 수여를 택해 시민 안전에 대한 의지를 반영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도 1호 특별요청으로 긴급 소방안전점검을 앞세웠다.

김진태 강원지사의 경우, ‘강원특별자치도추진단 설치 및 운영계획안’에 처음 서명하고 슬로건도 ‘새로운 강원도! 특별자치시대’로 확정해 ‘기승전 특별자치도’란 행보를 강조했다.

일각에선 단체장이 바뀌면서 지자체가 앞다퉈 새로운 슬로건과 비전을 쏟아내는 데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담백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서야 하는 슬로건이 잦은 교체로 오히려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공공시설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교체 비용이 만만찮고, 전임 단체장의 그림자 지우기란 곱지 않은 시선도 제기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구호가 너무 추상적이거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슬로건도 상당수”라며 “교체를 위한 예산 문제 등 비판을 면하려면 우선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개발한 뒤 그에 맞는 슬로건을 만드는 것이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수원=오상도 기자·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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