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스트레이트] 오세훈의 두번째 사과..’반지하 대책’ 또 공염불?

115년만의 기록적인 폭우

“안에서 열어야 해!” (창문 열어봐요. 창문!) “아 이거 깨야 돼요. 이거 깨야 돼요.” (뒤로 비켜봐요. 뒤로.)

[박명희/폭우 피해 주민] “폭포수 치듯이 물이 범람해서 차올라왔었어요.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이제 거짓말이라 할 거예요.”

사망 14명·실종 6명·부상 26명

지난주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각종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특히 인명 피해가 컸는데요.

서울에서만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인 4명은 침수된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었습니다.

“재난은 가난에 더 가혹하다”는 ‘재난 불평등’의 민낯이 또 한번 드러난 겁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이번 폭우가 가장 먼저 덮친 반지하 주택의 고달픈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지난 8일, 하루 최대 380밀리미터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했던 서울 동작구.

말그대로 ‘물폭탄’이 떨어졌습니다.

[폭우 피해 주민] “화장실 가니까 (물이) 이만큼 차는 거예요. 저는 못 나가고 있으니까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사흘 뒤 찾아간 골목길은 정말 폭격을 맞은 듯 했습니다.

옷더미와 가구들, 고장 난 선풍기와 뜯어낸 장판까지‥

물에 잠겼던 세간살이들을 군인들이 쉼없이 옮겨 나옵니다.

[수해 복구 지원 군인] “싱크대 상부장이 시멘트로 발려 있어요. 나머지는 다 (철거)해드리는데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아찔하게 차올랐던 흙탕물은 퍼내도 퍼내도 쉽게 줄지 않습니다.

[이OO/반지하 집주인] “죽겠어, 지금‥” (며칠째 하시는 거예요?) “비 올 때마다 이 난리야.” “오늘 사흘째잖아.”

한 평 남짓한 방 두 칸에 작은 화장실이 딸린 반지하.

이 집에 세들어 사는 80대 노부부는 이번 폭우로 생사를 오갔습니다.

[이재숙/반지하 세입자] “막 창문 좀 뜯어달라고 소리 지르면서 (이웃) 아저씨가 오셔서 뜯고는 우리 다 끌어냈지. 내가 소리 지르는 거, 저 아줌마가 안 들었어도 우린 죽었어. 기적이 일어난 거지.”

집주인과 이웃들이 좁은 창으로 노부부를 가까스로 구조한 겁니다.

[이재숙/반지하 세입자] (어쩌다가 이렇게 멍드신 거예요?) “창살 뜯고 날 여기로 꺼냈으니까.” (이렇게?) “그거 뜯고 창문을 벌리고 나왔지.”

목숨은 건졌지만 내일의 삶은 막막합니다.

남은 건 냄비 3개뿐, 당장은 집주인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계속 신세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재숙/반지하 세입자] (가실 곳이 있으신가요?) “자식들 집에나 가야지. 자식인데 괜찮지만, 우리가 (자식 집에) 살기가 싫지. 요새 세상이 그렇잖아. 늙은이들 밥 한 숟가락 먹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반지하)로 온 건데, 이 지경을 당한 거야.”

다른 골목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가봤습니다.

(계세요? MBC에서 왔는데, 비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시죠?)

집주인이 화가 잔뜩 나 있었는데요

[김OO/반지하 집주인] “이거 한전에서 나와서 (고쳐줘야 할 거 아냐?) 지하는 불이 있어야 일을 하지. 이거 불부터 먼저 봐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하는 말이 짜증나서 하는 소리예요.”

“침수됐다”는 지하로 내려가 봤습니다.

담벼락이 창문 절반을 가려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방은 전기까지 나가서 대낮인데도 캄캄합니다.

세입자인 백발의 70대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물에 젖은 벽지를 떼고 있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안녕하세요.) “이게 저희 방이에요.” (다치신 데는 없으시고요?) “네. 다친 데는 없어요.” (주무실 곳 당장 없으시잖아요.) “네. 여기서 자요.” (여기서 주무신다고요?) “저기, 집주인 집에서요.”

할머니도 아찔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창문에서 유리가 깨지면서 물이 막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간신히‥”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잖아요.)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저게 남의 일이 아니다’ 나도 그런 일을 겪을 지도 모르고‥”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 반지하.

물이 들이쳤던 좁은 창문과 계단 앞엔 누군가 놓고 간 국화가 놓여 있습니다.

집 아래로 내려가봤더니 벽면엔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고 천장까지 물이 찬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김성원/폭우 희생자 직장 동료] “반지하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긴급하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 살던 40대 발달장애인 여성과 여동생, 여동생의 10대 딸은 그날 밤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물이 순식간에 천장까지 차올라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한 겁니다.

[김인숙/서울 신림동 주민] “(할머니가) 우리 애들 좀 빨리 도와달라고, 막 울면서‥ 그래서 빨리 끊으라고. ‘야 빨리 지하 가봐라’ ‘애들이 물차서 못 나온단다’ 문이 안 열린 거야. 물이 차서‥”

[영화 <기생충>] “야, 기호야 창문 닫아라. 창문.”

폭우로 차오른 반지하방.

급기야 변기에서 오수가 넘쳐납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은 물에 잠긴 집을 다급히 탈출합니다.

‘Banjiha’ (반지하)

영화 <기생충>이 재작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반지하는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뜻엔 한국의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담겨 있기도 하죠.

외신들은 이번 폭우에 영화 <기생충>을 떠올렸습니다.

[중국 매체 (지난 10일)] “날로 심해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상을 다룬 영화, 2020년 상영된 한국영화 <기생충>을 연상케 합니다.”

영국 BBC는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의 비극을 집중 조명하며 현실에서의 결말은 영화 <기생충>보다 더 최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영국 BBC (지난 9일)] “여기서 실제 일어난 일은, 폭우가 쏟아지자 주인공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집 안의 물을 퍼내는 (영화 ‘기생충’의) 첫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결말은 훨씬 더 비참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폭우가 서울의 심각한 불평등을 드러냈다”고 꼬집었습니다.

[하인식/반지하 세입자 (지난 10일, 로이터통신)]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 사니까. 돈이 없으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비가 많이 와서 재난이 되어 버렸어요.”

반지하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요?

현재 지하 또는 반지하 주택은 모두 32만 여 가구,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61%가 서울에 있고, 경기와 인천까지 합치면 반지하집 96%가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반지하 주택 가구 중 절반은 비정규직이고, 74%가 저소득층에 속합니다.

평균 소득을 보면요.

아파트 세입자 가구의 351만 원, 절반 수준인 182만 원에 그칩니다.

서울 응암동의 반지하 집입니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진 않았다고 하는데, 현관엔 신문지가 깔려 있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이거 신문지는 왜 까신 거예요?) “습해서요. (습해서 바닥이) 습해서.”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은 아예 유리벽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아예 막으신 거예요?) “막혀 있더라고요. 밖에서 들여다보니까 다 막았어요.” (실제로 누가 힐끔 보거나 이런 경우가 있어요?) “보죠. 그래서 몇 번 잡기도 하고 이게 밖에서 보이니까‥”

바람도 햇빛도 들어올 수 없는 집.

하루종일 선풍기를 돌리고 제습기를 틀어도 습기와 곰팡이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이 집에서 10년 넘게 살았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바닥 이런 데는 습해서 까맣게 된 건가요?) “이거(장판) 들어내고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곰팡이 많은 데 만날 닦고 주의하고 그래도‥”

인근에 또 다른 반지하.

바람도 없고 습하다보니 늘 모기와 해충이 기승입니다.

“여기도 모기 있다.”

옷걸이 걸어 놓은 옷은 하루면 다시 축축해지기 일쑤.

[반지하 세입자] “우리 딸은 (제습기를) 계속 켜 놓으라고 그러는데 전기세 나간다고 내가 그렇게 자꾸 끈다니까. (물이) 금방 차요.”

누수가 발생해도, 보일러가 고장나도 집주인에게 말꺼내기 조차 어렵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남의 집에 사는 게 다 그렇지, 무슨 잔소리가 많아요’ 이래요. 그러고는 문자를 계속 보내고 해도 (답이 없고) 도대체 주인이‥ 이상한 주인을 만나서‥”

서울 상도동의 반지하 세입자는 가장 괴로운 게 매연이라고 합니다.

창문을 열면 집안이 차량 매연과 담배연기로 금세 가득차버립니다.

[반지하 세입자] “퀴퀴하고 이제 매연가스 냄새도 나고 잘 안 빠져 나가잖아요. 골목길이라서 담배를 피우면 이게 다 퍼져요.” (선풍기를 트세요?) “기다려요. 기다리면 알아서 빠지니까 그냥 문 열고 기다려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도대체 왜 이런 반지하를 짓고 살기 시작했을까요?

당초 지하, 반지하는 유사시 방공호 또는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대한뉴스 (1967년)] “언제 어느 때 침공해올 지 모르는 적의 공세에 대비해서 만든 이 방공호는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철근 콘크리트 구조입니다.”

1970년 신축 단독주택과 다세대 주택에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했고요.

1975년엔 거주 목적의 지하실 사용을 조건부로 허용했습니다.

1984년엔 지하의 깊이를 완화해주면서 지금과 같은 반지하 주택이 일반화됐는데요.

수도권 인구 집중이 심해지면서 지상보다 싼 반지하 집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농촌에서 도시로 막 몰려든 사람들이 집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울이 만성적인 주택 부족을 겪게 되니까 집이 아닌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하 공간을 가난한 사람들이 집으로 이용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반지하는 태생부터 침수 피해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1998년 8월)] “이번에 침수 피해를 겪은 서울 중랑천변 주민들은 대부분 지하나 반지하에 살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반지하 건축을 금지한다는 가이드라인이 나왔는데, 개발업자 등이 집단 반발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그러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반지하가 또 침수 피해를 입자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건물을 못 짓게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2010년 9월)] “(서울시는) 상습 침수지역에는 앞으로 반지하 주택을 아예 짓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다음해 여름에도 서울 강남과 광화문 일대에 물난리가 나고, 우면산 산사태로 18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오세훈/당시 서울시장 (2011년 8월)]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올해를 서울시 기상이변 수방 계획의 원년으로 삼겠습니다.”

하지만 반지하 금지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2012년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게 건축법이 개정됐지만 강제조항이 아니다보니 법은 있으나마나였습니다.

10년이 지나, 오세훈 서울 시장은 또 비슷한 사과를 했습니다.

[타가] 서울시가 수해방지·치수 예산을 지난해보다 896억원 삭감한 게 드러났고, 폭우 예보가 있었음에도 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거셌기 때문입니다.

[오세훈/서울시장 (지난 10일)] “중요한 것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이번과 같은 인명 피해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지난 주엔 ‘근본적인 대책’이라며 “아예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겠다”고 선언했는데요.

그러면서 이주비용으로 2년동안 월 20만 원씩 지원하겠다 했죠.

이제 반지하를 떠날 수 있을까?

주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반지하 세입자] “임대주택 준다고 해도 내가 한 달에 그거(임대료) 낼 돈이 없어서 못 살아‥ 줘도 무서워 낼 돈이 없어서. 나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서울시 대책이 나온 바로 다음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SNS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습니다.

반지하도 사람 사는 곳인데, 반지하를 없애면 그 분들은 어디로 가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이 시장에 많이 나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서울시가 곧장 추가 계획을 내놨습니다.

30년 된 오래된 공공임대주택을 재건축해서 20년 동안 23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서울시는 아직 구체적인 예산 계획이 없다고 했습니다.

[☎ 서울시 관계자] (예산 같은 건 잡힌 게 있어요?) “없어요, 정책이라는 게 우선순위를 두면 더 (추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이제 구체적으로 짜면‥” (20~30만 원도 없어서 반지하 가는 분들인데 도움이 될까요?) “도움이 되도록 바우처(지원) 금액을 설정하겠죠. 그 정도 수준의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제공을 하시겠죠.”

하지만 저렴하고 살기 좋은 임대주택

반지하에 사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서울 송파에 지은 공공임대주택이 올해 입주하는데요.

23제곱미터짜리 임대주택이 보증금 5500만 원에, 월세가 35만 원입니다.

서울 시내 반지하가 보통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20만 원 안팎인 걸 고려하면 비싼 편입니다.

[박기선/서울 동작구 부동산 중개업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짜리도 지하는 있고요. 1층으로 올라갔을 때는 25만 원짜리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하를 얻어서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그나마 반지하는 지난 2020년에서야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상에 포함됐는데요.

공급이 워낙 적다보니 지금까지 서울에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옮긴 지하 혹은 반지하 거주민은 730가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서울시가 오래된 공공임대주택을 재건축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건데요.

그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어디로 가냐도 문제입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이게 쉬운 이야기가 아니에요. 노인과 장애인 분들 같은 취약계층이 많은데 생활 환경을 급격하게 바꾸는 것 자체가 이분들 삶에 굉장히 위협적인 요소가 돼요. 이주 대책을 마련하기 쉽지도 않고 추진이 어려운 일이에요.”

결국 반지하가 없어지면 갈 곳은 쪽방이나 고시원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게 아니라 돈에 맞춰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주거비 지원은 미국도 (월) 80만 원에서 90만 원 정도 돼요. 우리는 평균 20만 원이 안 되죠. 주거비 지원을 적게 하기 때문에 ‘괜찮은 집에 가서 사세요’라고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400226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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