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잡음 끊이지 않은 역대 인수위.. MB 땐 ‘실세 간 파워게임’도 [심층기획 – 반환점 돈 인수위]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가리켜 흔히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쓴다. 새 정부의 첫 단추를 꿰는 조직인 인수위가 입각이나 청와대로 가는 등용문처럼 여겨진 탓에 역대 인수위들은 대부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인수위 내에서 차기 정권 실세들 간 ‘힘겨루기’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정권 교체기엔 신·구 권력 간 충돌을 빚거나 ‘점령군’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인수위 내 잡음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명박(MB)정부 출범 전 꾸려진 인수위다.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이자 정권 탈환의 공신으로 불렸던 ‘6인회’ 멤버인 이상득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이 인수위 때 정면충돌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당시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이후 정무부시장까지 지내는 등 최측근으로 분류된 정 전 의원은 대선 때까지만 해도 핵심 업무를 맡으면서 실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원로파의 견제로 인수위 시절부터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정 전 의원으로 대표되는 친이계 소장파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의 불만은 정부 출범 이후까지 이어졌다. 결국 정 전 의원이 “정부 인사 실패는 청와대 몇몇 인사들의 전횡 때문”이라는 폭탄 발언으로 이 전 의원을 직격하면서 고름이 터졌다. 이 일이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번지면서 MB정부는 임기 초부터 ‘내분’에 휩싸였다. 양측의 갈등은 MB정부 임기 내내 계속됐다.

MB정부 인수위는 밖으로는 참여정부와 충돌하며 신·구 권력 간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인수위는 기존(정부)의 정책이나 당선자의 공약에 대해 찬반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다. 나아가 호통치고, 자기반성문 같은 것을 받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점령군 같은 인수위라는 표현도 이때 나왔다.

박근혜정부 인수위는 MB정부 때에 비해 내부 갈등은 덜했으나, 보안을 지나치게 강조해 ‘불통 인수위’란 오명을 얻었다. 인선과 관련해서도 철통 보안을 유지하다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준 인수위원장(전 헌법재판소장)이 아들들 병역과 부동산 문제 등으로 5일만에 자진 사퇴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보안만 신경 쓰다가 인사 검증엔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직선제 개헌 후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된 김대중(DJ)정부 때는 인수위원들이 김영삼정부의 비리 의혹 색출에 나섰다가 당선인에게 질책을 받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공무원들의 문서 파기 의혹이 제기되자 인수위원장이 각 부처의 문서 파기 중단을 공식으로 요구한 일도 있었다. 사실상 최초의 인수위인 김영삼(YS)정부 인수위에선 인수위원 지역 안배 등을 놓고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문재인정부는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수위 기간 없이 정권을 넘겨받았다. 대신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국정과제 등을 설계하게 했다.

이강진·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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