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임금 인상에 대한 공포는 ‘약 아닌 독’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6월2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요 대기업 경영진을 만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물가가 임금 인상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소득 유발 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발언이 보도되자 직장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물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 노동자에게 희생을 전가하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 나오기도 했다.

임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여러 나라에서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이와 같은 추세와 전혀 동떨어진 고민을 하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흥전략에 따라 4000억 엔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지원을 받으며 규슈의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 중이다.

최근 전 세계가 소득 유발 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과 반대로 일본은 고임금을 우려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퇴근 중인 도쿄의 샐러리맨 모습ⓒAP 연합

세계 최고였던 日 임금 해마다 감소 왜?

공장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TSMC는 가동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인에 착수했는데, 그 임금 수준이 매우 놀라웠다. 대졸 초임의 경우 28만 엔(약 286만원)이었고, 석사 수료자의 경우 32만 엔(약 306만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박사 수료자의 경우 36만 엔(약 345만원)에 불과했다.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하면 성과급 등을 포함해 수억원의 급여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저임금을 책정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TSMC의 이러한 임금 책정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대규모 인력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목 임금은 거의 상승하지 않고 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임금은 1997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6년에는 89.7로 오히려 하락했다. 임금이 낮아진 만큼 퇴직금 역시 감소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취업조건종합조사에 따르면 일본 직장인의 평균 퇴직금은 1997년 2871만 엔을 기록한 이후 계속 감소했다. 2018년의 경우 1788만 엔으로 21년 만에 1000만 엔 이상 낮아졌다.

일본의 저임금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낮은 노동생산성이다. 노동생산성은 기업의 부가가치액을 노동자 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2020년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809만 엔(약 7730만원)으로 38개 OECD 회원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2019년 26위에 비해 2단계 낮아진 것이며,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였다. 물론 일본 기업이 부가가치 가운데 임금으로 배분하는 비율은 60% 전후로 다른 주요 국가와 비교해볼 때 특별히 낮은 것은 아니다. 즉 일본 기업들이 임금으로 적게 지출한다기보다는 일본 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낮은 것이다.

일본 기업의 낮은 부가가치 생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중소기업의 한계다. 기업 규모별 월 임금을 살펴보면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성의 경우 37만7000엔(약 359만원), 중기업 33만1000엔(약 315만원), 소기업 30만2000엔(약 287만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을 100으로 했을 때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는 중기업 88, 소기업 80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중소기업의 임금이 낮은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이 좀처럼 도태되지 않고 존속한다. 2008년 리먼 충격을 받아 도산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당시 민주당 정권이 금융원활화법을 제정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산 방지를 위한 정책 지원이 계속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세청의 2019년 집계에 따르면 법인 전체에서 차지하는 적자 법인 비율은 무려 65.4%에 달한다. 적자 상태로 사업을 계속하는 중소기업이 만족스러운 임금 인상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임금 수준을 올리려면 중소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 개혁, 즉 ‘한계 중소기업’의 도태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일본 내에서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두 번째로 일본 노동자의 업무 능력 저하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일본 노동자는 성실함과 능력 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분석은 의외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우수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취약하다. 일본의 대학원 진학률은 남성 14.2%, 여성 5.6%로 OECD 회원국 중 29위다. 낮은 대학원 진학률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 기업 역시 사내 교육에 무관심하다. 실무훈련(OJT)의 경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교육에 일본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있다. GDP(국내총생산)에서 기업의 노동자 능력 개발을 위해 지출하는 비율은 미국 2.08%, 프랑스 1.78%인 데 비해 일본은 0.1%에 불과하다. 규모 자체도 적을 뿐만 아니라 1995~99년 0.4%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과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일본 노동자의 업무 능력은 약해지고 있고, 이는 일본 기업의 낮은 부가가치 생산성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불필요한 갈등보다 생산성 높이는 데 주력

세 번째로는 비정규 노동자의 증가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고용형태별 임금을 보면 정규직·정직원의 경우 월급이 32만4200엔(약 308만원)이지만 비정규 노동자의 경우 21만4800엔(약 203만원)으로 격차가 매우 크다. 2020년 비정규 노동자는 2090만 명으로, 전체 고용인원 5620만 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2%에 달했다. 1989년 비정규직 비율이 약 20%였으므로,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가 늘어난 것이 평균 임금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동시에 비정규 노동자 증가로 인한 협상력 약화, 종신고용을 전제로 한 연공급 체계로 인한 체계적인 임금협상 시스템 부재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과 사회의 높은 생산성과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반영한다. 단기적으로 낮은 인건비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투자와 고부가가치화로의 전환을 가로막으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낮은 임금은 소비 여력과 근로 의욕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임금 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자제 요구보다는 생산성에 비례한 임금 인상의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 및 노동자 역시 임금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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