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거취는 알아서”, MB 땐 ‘솎아내기 시도’ 본격화,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시끌

[경향신문]

정권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기관 인사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존 정부가 임기 말 ‘알박기’식 기관장 인사를 단행하면, 새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며 이를 제지하려 하거나 집권 이후 그 인사를 ‘솎아내기’ 위해 압박하는 식의 갈등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반복돼 왔다. 여야가 바뀌는 정권 교체 때는 물론이고 정권을 재창출한 경우에도 공공기관 인사를 놓고 신구 권력은 기싸움을 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 직후인 2004년 5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은 김대중 정부 시절 임명된 정부 산하기관장 인사를 두고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되고 노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을 재개하면서 가장 먼저 지난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부터 물갈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인사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이후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다. 이명박 당선인 시절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청와대에 두 차례에 걸쳐 ‘인사를 자제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예정된 인사’라는 이유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사장 및 감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 등을 임명하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인사 자제 요청이 거듭되자 노 전 대통령은 “한번 더 자제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을 모욕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내 맘대로 하겠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뒤 이전 정부 인사 ‘솎아내기’를 시도했다. 당시 국무총리실은 정부 출범 2개월 뒤 23개 연구기관장들에게 사표를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전체 303개 공공기관장 중 119명이 정부 집권 이후 1년 내 사퇴했다.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개 석상에서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와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 감사 자리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 공공기관 287곳의 기관장·감사·상임이사 중 44명은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낙하산’을 대놓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자 대통령 직무대행이 인사 논란을 지폈다. 2016년 12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은 이양호 당시 농촌진흥청장과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각각 마사회장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임기가 수개월에 불과한 권한대행이 임기 3년의 마사회장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집권 이후 전 정부 인사를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청와대 비서관은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퇴를 종용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그것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9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산하 공공기관 40곳의 임원 197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는데 이 중 문재인 후보 캠프나 민주당 출신 인물이 36%(71명)라고 밝혔다.

지난 8일 취임한 양영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은 18·19대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고, 지난달 임기가 시작된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이버정보비서관과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냈다. 대선 직후인 지난 10일 취임한 임찬기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는 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냈다.

일부 임원들은 정치권과 공공기관 비상임이사를 수시로 오갔다. 김선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실 행정관은 2020년 4월 서민금융진흥원 비상임이사 임기를 시작했다가 2개월 만에 의원면직 처리됐다. 그는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 6월 임기가 종료되는 관료 출신의 육동한 산업은행 비상임이사는 2019년 4월 주택금융공사 비상임이사를 맡았다가 제21대 총선 한 달 전인 2020년 3월 면직됐다. 민주당 후보로 경선에 출마한 후 3개월 만인 2020년 6월 산업은행 비상임이사를 다시 맡았다.

이창준·유희곤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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