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간접고용 구조 바뀌지 않으면 싸움 반복될 것”

서재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장이 지난 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137일 투쟁…시급 400원 인상 합의

‘진짜’ 사장은 학교인데 업체와 교섭

학교가 돈 안 주면 업체도 손 못 써

업체 바뀌면 다시 교섭…구조 문제

캠퍼스는 거대한 일터다. 교수·강사와 행정 직원부터 교정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식당의 종업원까지, 교육만큼이나 거대한 노동이 캠퍼스에서는 매일 이뤄진다. 그리고 누군가의 교육환경과 누군가의 노동환경 양쪽을 모두 챙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청소노동자들이다. 이른 아침 모든 공간을 깨끗이 치워놓고 잘 보이지 않는 휴게공간에서 숨을 돌리는 청소노동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투명인간’이라고 부른다.

올여름 이들은 투명인간을 거부하고 땡볕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나19로 닫혔던 교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돌아왔지만, 이들은 ‘이대로면 더는 일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임금은 그동안 훌쩍 뛴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사장’인 학교는 간접고용 노동자인 이들의 요청을 외면했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13개 대학에서 농성투쟁을 시작한 이유다.

이 가운데 서울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은 137일간의 투쟁 끝에 지난달 28일 용역업체와 ‘시급 400원 인상’이라는 잠정합의를 마쳤다. 투쟁에서 ‘진짜 사장’과의 대화를 가로막는 간접고용의 칸막이 문제를 절감했다는 서재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장(57)을 지난 9일 고려대에서 만났다.

서 분회장은 2009년 아르바이트 청소노동자로 고려대에서 일을 시작했다. 2010년 직원이 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서 분회장은 가입할 때만 해도 노조가 뭔지 잘 몰랐다. 뉴스에서 노조의 ‘데모’를 보면 “무섭다”고 생각하곤 했다. 2010년 ‘현실적인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달라’며 시작한 투쟁에서는 “아는 사람 만날까봐” 뒤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투쟁이 성과를 냈다. 최저임금 수준에서 몇백원 오른 정도였지만 그는 “ ‘우리가 말하니까 (임금이) 조금 오르네?’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은 승리의 기억이 쌓여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던 서씨는 교육부장에서 부분회장을 거쳐 분회장이 됐다.

137일간 이어진 올해 투쟁은 서 분회장이 치른 가장 긴 싸움이었다. 물가와 세금은 치솟았지만 업체는 ‘시급 440원만 올려달라’는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3월 초 넣은 쟁의행위 조정신청은 이뤄지지 않았고, 3월 말부터 청소노동자들은 점심 집회를 시작했다. 면담은 이어졌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진전은 없었다.

7월 초, 본관에 찾아간 서 분회장은 학교 측 관계자와 대화를 요구했고 7월6일 본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그날 학교는 본관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노동자들에게서 무언가가 터지듯 북받쳤다. “이런 취급받고는 못하겠다”며 청소노동자들은 대학 본관을 점거했다. 학생들은 응원 집회를 열고 “조를 짜서” 찾아와 자고 갔다. 학생들이 있으니 용역들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 23일간의 점거농성 끝에 노동자들은 업체와 ‘시급 400원 인상’과 ‘샤워실·휴게실 개선’에 잠정 합의했다.

“투쟁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서 분회장은 말한다. 400원이라도 올리지 않으면 사실상 월급이 깎이는 셈인데, 투쟁을 해야만 시급이 올라간다. “모르는 분들은 돈을 더 받으려고 떼쓴다고 생각하겠지만 반대다”고 그는 말한다.

‘하고 싶지 않은 투쟁’이 반복되는 구조도 굳건하다. 교섭은 업체와 하는데, 업체는 학교가 돈을 주지 않으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업체가 바뀌면 그동안의 교섭을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너무 웃기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싸움은 반복될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서 분회장은 말한다. 그는 “이제 몸이 잘 안 따라준다. 새로운 분들이 나와서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면서도 “(투쟁에 승리할 때면)그래도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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