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꿀벌 없는 세상, 인류도 없다”..’78억 마리’ 실종사건 범인은 나?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포항=뉴스1) 최창호 기자 =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양덕동 야산에 있는 매화 나무에 꿀벌들이 날아들고 있다. 2022.3.15/뉴스1

손톱 만한 미물. 하지만 작물의 70% 이상을 번식하게 만들어주는 생태계의 거물. 꿀벌이다. 꿀벌이 없는 세상?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꿀벌이 없으면 4년 내에 인류도 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전라·경상 등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꿀벌 실종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겨울에 폐사한 꿀벌이 78억마리에 달한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사체’도 없이 벌통이 텅텅빈 사례가 잇따른다. ‘폐사’ 대신 ‘실종’이라는 말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찐터뷰’는 ‘꿀벌 실종사건’의 이유를 듣기 위해 지난 20일 정년기 꿀벌 전문 수의사(꿀벌동물병원 원장)를 직접 인터뷰했다. 지난 21일에는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 및 김지수 전남농업기술원 곤충잠업연구소 연구사와 전화로 얘기를 나눠봤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었지만 큰 맥락에서는 같았다. 지구 온난화가 작용한 결과라는 것, 인간이 만든 인재(人災)라는 것.

“벌 자체가 많이 태어나지 않더라…몇년 됐다”

국내 최초의 ‘꿀벌 수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정년기 원장은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꿀벌 실종사건’을 두고 “올해들어 딱히 문의가 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의외였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매년 발생한다는 것일까. 그는 자신이 체감한 ‘꿀벌 실종’ 현실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원래 겨울을 나면서 꿀벌의 10%는 정상적으로 없어진다. 전체적으로 그것 보다 조금 더 많이 없어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게 지금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그 전부터 예고돼온 것이다. 5~6년 정도 전부터 이랬던 것으로 본다. 체감한 것은 4년 정도 됐다.”

실제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약 15.4%의 꿀벌이 월동과정에서 폐사한 것으로 파악된다(지난 3월2일, 사육군수 기준). 피해농가 비율은 약 17.3% 수준이다. 정 원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꿀벌이 사라졌다고 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그와 얘기를 더 나눠봤다.

– 꿀벌이 양봉 현장에서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가.
▷”꿀벌은 여왕벌, 일벌, 수벌로 군집된 것이 한 몸이다. 꿀벌 한 마리는 세포다. 겨울을 나려면 꿀벌의 군집이 커야 한다. 그런데 최근들어 봉군의 덩치가 작아졌다. 그 정도의 꿀벌 군집으로는 추위를 못 이길 정도다. 그러니 벌들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정년기 꿀벌동물병원 원장/사진=최경민 기자

– 그런 사례가 많았나.
▷”그렇다. 이걸 나는 계속 봐왔다.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사는 겨울벌은 대기온도와 먹이 영양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9월초(절기상 백로)쯤 태어나는데 이때 충분히 산란이 안 됐다고 봤다. 그렇게 조그만 군집이 남아버리면 겨울을 날 수가 없다. 그러니까 폐사체 자체가 발견이 안 되는 것이다. 벌 자체가 많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한 마디로 말하기 쉽지 않아 답답하지만, 기후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꿀벌의 면역 저하와 외부 기생충의 증가.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누적된 면역 결핍 등의 현상이다. 그러니 인재라고 할 수 있겠다.”

지구온난화, 꿀벌 면역력 열성화로

정 원장의 진단의 핵심은 ‘온난화’에 있었다. 일단 꿀벌 자체가 변온동물이어서 ‘더워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평균기온이 오르면 꿀벌에 붙는 진드기가 번성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진드기가 늘어나니 양봉농가는 살충제를 더 자주, 무분별하게 활용한다. 심지어 이런 약제에 대한 국가적 통제나 지침도 없었다. 수십 년간 반복된 악순환의 연속. 꿀벌의 번식력과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꿀벌 실종’이 가장 광범위하게 일어난(사육군수 기준 43.2%) 전라남도에서 이 문제를 조사해온 곤충잠업연구소의 김지수 연구사 역시 ‘온난화에 따른 면역력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전남 뿐만 아니라 전북(31.4%), 대구(20.5%), 부산(18.4%), 경남(13.7%), 경북(12.6%) 등 따뜻한 남부지방에 피해가 집중된 것을 두고 “온난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사는 “충분히 산란이 안 됐다”는 정 원장의 해석에는 거리를 두면서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꿀벌들의 월동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같은 듯 다른 김 연구사의 진단은 다음과 같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서울숲 꿀벌정원에서 도시 양봉을 하는 사회적 기업 ‘어반비즈서울’ 관계자가 벌통을 살펴보고 있다. 유엔은 살충제·면역력 약화·기후변화 등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벌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5월20일을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했다. 2021.5.20/뉴스1

“꿀벌들은 산란을 9월에는 중지하고, 힘을 비축해서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해의 경우 10월들어 산란에 들어가버렸다. 지난해 10월이 이례적으로 더웠기 때문에 벌들이 착각을 하고 알을 낳아버린 것이다. 이후 지난 1월에 꿀벌집을 열어보니 상태에 문제가 있었다. 꿀벌들의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여서 바이러스 감염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김 연구사는 최근 3~4년 동안 온난화로 꿀벌들에게 ‘사양'(설탕물)을 먹인 것 역시 면역력 약화를 불러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상적이라면 3~5월까지 일반벚꽃, 산벚꽃, 단풍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의 순으로 개화가 되며 꿀벌들에게 꾸준하게 양질의 꿀이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날씨가 해마다 따뜻해지며 3월 이른 시점에 이들 꽃들이 한 번에 피게 돼서 늦봄에는 꿀벌들이 먹을 게 없다는 것. 울며 겨자먹기로 꿀벌들에게 ‘사양’을 공급하는 이유다.

그는 “꽃꿀을 먹지 않고 사양을 먹어온 게 꿀벌들의 면역력 문제로 이어졌을 것이다. 꿀벌들이 그저 연명을 해온 수준”이라며 “지구온난화로 인해 꿀벌들의 면역력이 열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분명한 ‘인재’…꿀벌 위해 ‘할 수 있는 일’ 부터

이번 사태와 관련한 전국 전수조사를 해온 국립농업과학원의 최용수 연구관은 “정확한 표현은 ‘월동 폐사’라고 할 수 있다”며 “지난해 11~12월에 고온으로 꽃이 이른 시기 개화하는 현상으로 봉군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광주=뉴스1) 정다움 기자 = 7일 오후 광주 서구 서창동 한 양봉장에 벌통이 놓여져 있다. 해당 농장에서는 130통에서 사는 꿀벌이 집단폐사해 4천여만 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2022.4.7/뉴스1
꽃이 뜬금없이 초겨울에 피면서 꿀벌들이 꽃가루 채집 등 야외활동을 활발히 했고, 그런 와중에 겨울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이 벌들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폐사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꿀벌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이다.

최 연구관은 정년기 원장처럼 살충제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꿀벌의 발육 번데기에 기생하는 응애류는 월동 꿀벌의 약군화(월동 벌무리의 일벌이 정상보다 적게 구성되는 현상)를 초래했다”라며 “또 응애를 없애려고 약제를 최대 3배 이상 과도 사용해서 꿀벌 발육에 악영향도 미쳤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꿀벌들의 집단적 면역력이 약화돼온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 등이 이런 기조를 더욱 심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이런 현상을 분명한 ‘인재’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꿀벌 실종’의 근원이 수십 년 동안 진행돼 온 지구온난화라는 점, 직접적 이유를 딱 한 마디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악순환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다가오는 겨울에 더 많은 꿀벌이 실종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지나치게 비관적 전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보다 정확한 이유 분석, 친환경 약제 개발, 온난화에 맞춘 봉군 관리 매뉴얼 확보 등 꿀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시작하자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정년기 원장은 “지구 온난화도 결국 인간이 환경 오염을 일으켰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깨우쳐야 한다. 한 종류의 곤충 중 70% 이상의 수분작용을 해주는 곤충은 벌밖에 없다”라며 “인재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고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서귀포=뉴시스] 우장호 기자 = 맑은 날씨를 보인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엉덩물계곡에 활짝 핀 유채꽃 사이로 꿀벌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제주 성산읍의 낮 기온이 18.9도까지 오르는 등 포근한 날씨를 나타냈다. 2022.03.16.

대전, 서울=최경민 기자 brown@mt.co.kr,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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