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이 우리 사정 알까?”..새 정부 경제 통합의 3대 과제

지난 12일 새벽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일대에 일용직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국내 일용 일자리 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래 매년 감소세를 보이며 올해 1월 100만 명에 턱걸이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새 대통령이 부유하게 살았다고 하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 어려운 거 알지 걱정이에요.”

지난 12일 토요일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일대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안효식(56)씨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사진이 붙은 현수막을 보며 말했다. 현수막엔 “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윤 당선자의 다짐이 쓰여있었다. 그 아래엔 일용직 일감을 찾는 중국인과 동포 노동자들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중국 사람이 너무 많아졌어….” 안 씨는 한국인 인부들과 함께 맞은편 인도에 서서 “지난해 이맘땐 일주일에 나흘은 일을 나갔지만 이번 주엔 겨우 이틀만 일했다”며 “겨울이 지나서 일감이 한참 많을 때인데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일용직 일자리 감소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내 일용 근로자(고용 기간 1개월 미만) 수는 123만여 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에 견줘 20만명 가까이 줄었다. 올해 1월엔 100만명을 간신히 넘었다. 남구로역에 있는 ㅈ인력사무소 직원은 “노가다(막노동)는 몸이 재산인 만큼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되니까 일을 아예 쉬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윤 당선자가 ‘통합’을 약속했지만 그 과정은 절대 만만치 않다.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정하는 경제 문제가 특히 그렇다. 누군가 일자리를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날 허탕을 치고, 정부 지원의 수혜자 뒤편엔 소외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한겨레>에 새 정부 경제 관료들이 신경 써야 할 정책 과제로 복합 위기 대비와 함께 양극화 해소를 꼽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공직 사회를 지킬 후배들을 위한 조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주도했던 김 전 차관은 “코로나 팬데믹 충격이 가져오는 가장 뚜렷하고 가슴 아프고 앞으로 더 무겁게 다뤄야 할 정책 과제가 K자 양극화”라고 언급했다. 일용직·빈곤 노인 등 저소득층 지원과 양극화 완화는 사회 분열과 갈등을 줄이는 통합의 영양제와도 같다.

경제 분야에서 새 정부가 만날 통합의 첫 과제는 코로나 손실 보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데다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어서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 “50조원 이상의 재정을 확보해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정당하고 온전한 손실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부가 선거 전 소상공인과 소기업 320만∼332만명에게 지급한 1·2차 방역 지원금(400만원)도 600만원을 추가해 최대 1천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손실 보상과 별개로 방역 지원금 추가 지급에 필요한 금액만 20조원가량이다.

정부가 국채를 찍어 빚으로 재원을 조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는 “50조원이 풀리면 물가 상승 압력이 생기고 기준금리도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모두가 물가 또는 금리 상승의 부담을 십시일반 나눠져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는 정부 지원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형평성·사각지대 논란 등을 다독이며 국민적·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규제 완화’를 앞세워 일자리 등 경제의 파이를 키우려는 윤 당선자의 기업 정책에도 통합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재계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우태희 상근부회장(전 산업부 차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도 열심히 했지만 규제가 너무 많이 생겨 기업이 숨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새 정부가 규제 개혁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활동하게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새 정부에서 수혜가 예상되는 분야는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플랫폼 기업들이다. 현 정부가 ‘갑질’ 방지에 무게를 둔 것과 다르게 윤 당선자가 기업의 자율 규제 등 규제 최소화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지난 10일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가 일제히 8%대 상승률을 보인 까닭이다.

중소기업 쪽 이해관계는 다르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전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윤 당선자의 최우선 과제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결”이라며 “온라인 플랫폼의 우월적인 지위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성장한 비대면·온라인 거래 시장에서 대형 플랫폼 기업이 과도한 수수료와 광고비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런 불공정 거래를 방지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새 정권에선 정부와 국회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만큼 앞으로 다수당인 민주당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출구 앞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은 이번 대선에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윤 당선자 득표율(43.8%)이 가장 낮았고, 미아동은 강북구 내에서도 윤 당선자가 이 후보에게 가장 큰 득표수 차이(1543표)로 뒤진 지역이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윤 당선자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그러나 윤 당선자가 끌어안아야 하는 이들은 지금 무엇을 우려하고 어떤 걸 바랄까. 12일 오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주민들을 만났다. 강북구는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윤 당선자 득표율이 가장 낮았던 지역이다. 미아동은 강북구 안에서도 윤 당선자가 이재명 후보에게 가장 큰 표차로 뒤진 지역이다.

이곳에서 ㅈ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박아무개 대표는 “대통령은 미래를 보며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당선자를 에워싼 사람들이 주로 검찰·법조계 출신으로 경제와 외교를 잘 모르는 것처럼 보여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60대 회사원 이아무개씨는 “이번 대선 기간엔 같은 직장 동료들끼리도 이재명 팀과 윤석열 팀이 나뉘어 말다툼할 만큼 갈등이 특히 심했다”며 “경제가 대통령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말로만 협치하지 말고 우리 편이 아니라도 능력과 실력이 있다면 기용하고 양보할 건 양보하는 등 통합의 진정성을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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