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제 식구 감싸는 국회 윤리특위, 제재·견제 장치 필요”



[SUNDAY 인터뷰]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은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의원 징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최근 여야 정치권이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 착수한 가운데 국회의원 징계 기구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이번에야말로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원들의 일탈 행위를 자체 징계하도록 돼 있는 윤리특위가 매번 ‘제 식구 감싸기’ 비판 속에 솜방망이만 휘두르며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한 데 대한 여론의 질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1991년 국회의원 윤리강령에 따라 윤리특위가 설치된 뒤 31년간 가장 무거운 처벌인 제명을 결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국회는 2005년 외부 인사 8명으로 국회의장 직속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이 또한 강제권이 없다 보니 실질적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에도 자문위는 박덕흠·윤미향·이상직 의원을 제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만장일치로 국회에 전달했지만 정작 윤리특위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21대 국회 후반기 자문기구 수장을 맡은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경희대 교수)은 “윤리특위가 식물 기구로 전락한 건 징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의원들에게 명시적 손해가 없기 때문”이라며 보다 실질적인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1대 후반기 국회 출범을 앞두고 중앙SUNDAY가 노 위원장을 만나 윤리특위와 자문위를 정상화하고 국회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외부 기구는 의정 활동 간섭할 우려

Q : 윤리특위가 사실상 실종된 근본 이유는.
A : “무엇보다 비윤리적 행위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재·견제할 기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일반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직원의 일탈 행위가 발생하면 조직 내 감사팀이 작동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같은 회사 동료를 징계한다는 측면에서 여기까진 국회 윤리특위처럼 ‘셀프 징계’다. 하지만 회사가 징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용노동부 등 담당 부처의 제재를 피할 수 없다. 공직 사회도 징계를 머뭇거릴 경우 감사원 감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국회는 어떤가. 동료 의원을 감싸도 이를 제재할 장치가 전혀 없지 않나. 언론과 유권자들이 감시하고 심판할 수 있다지만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Q : 비상설 기구로 격하된 탓도 커 보인다.
A : “윤리특위가 상설 위원회였을 땐 언제든 의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심사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 비상설 기구로 바뀌면서 정해진 기간에만 심사할 수 있게 됐고, 활동 시한이 종료되면 징계해야 할 의원이 생겨도 심사할 기구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 돼버렸다. 또 활동을 재개할 때면 특위 구성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으로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Q : 자문위 의견도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A : “맞다.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문위도 윤리특위 산하가 아닌 국회의장 직속으로 뒀지만 현행법상 자문위는 말 그대로 자문 역할로 제한돼 있다. 지난 1월에도 의원 세 명을 제명하라는 의견을 전했지만 윤리특위는 지금껏 회의 자체를 열지 않고 있다. 윤리특위가 자문위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국회법이나 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실정이다. 그들에겐 전혀 급한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Q : 징계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적잖다.
A : “다른 나라의 국회 윤리 심사 기준을 보면 ‘이렇게까지 제한하나?’ 싶을 정도로 금지 행동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반면 우리 국회법은 단지 선언적 수준이다. 이젠 우리도 구체적 사례를 적시해 제재 효과를 높여야 한다. 과거 위반 사례를 명문화해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뭔지 의원들이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의원들도 ‘내 사례가 법에 명시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노 위원장은 윤리특위가 제 기능을 되찾으려면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금품 수수나 성범죄 등 형사적 책임을 질 수준의 범법 행위는 수사기관에 맡기고 의원들의 막말이나 보좌진에 대한 갑질 등 형사처벌에 이르기 어려운 일탈 행위를 징계하는 데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노 위원장은 “요즘 국회를 보면 막말과 갑질이 난무하는데 정작 징계는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퉁치고 있다”며 “징계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데 처벌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Q : 실제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이다.
A : “현재 징계는 경고, 사과, 출석 정지, 제명 등 네 가지뿐이다. 파면에 해당하는 제명과 나머지 세 개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현역 의원이 30일 출석 정지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진지하게 반성을 할까. 국민도 과연 제대로 처벌했다고 생각할까. 의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활동비 삭감이다. 세비 3개월 감봉이나 의원실 운영 불이익 등 직접적인 처벌 효과가 큰 징계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영국 감찰관제처럼 비위 예방 힘써야

Q : 의원들 징계를 담당할 독립적 성격의 외부 기구를 두자는 의견도 나온다.
A : “그건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헌법이 국회의 자유로운 의정 활동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기구를 통해 강제 징계를 하면 사실상 국회의원의 활동에 간섭하는 게 된다. 또 자칫 옥상옥 기구로 전락할 수도 있는 만큼 국회 스스로 내부 기강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의원이 21대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가 됐는데, 평소 윤리특위 징계의 실효성을 강조해온 점에 비춰볼 때 21대 후반기 국회에선 보다 진전된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 그럼에도 국회 스스로 개혁하도록 맡겨 놓을 순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A : “국회가 바꾸고자 하는 뜻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보완할 수 있는 점이 많다. 국회법이나 규칙 개정이 첫걸음이다. 윤리특위에 의원 징계안이 접수되면 무조건 30일 내 처리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나 전원 합의된 자문위 의견은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는 조항 등을 신설하는 것만으로도 윤리특위의 실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비상설화된 윤리특위를 다시 상설화하는 것 또한 여야 합의만 되면 언제든 가능하다.”

Q : 사후 처벌은 물론 사전 예방도 중요한데.
A : “영국의 경우 의회윤리감찰관 제도를 도입해 비위 행위 금지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일탈 행위도 선제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우리도 국회 감사실이 있지만 행정직원만 감찰할 뿐이다. 당장 감찰 대상을 국회의원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하기엔 이르지만 사전 예방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맞다. 과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도 정부와 기업이 김영란법 교육을 엄청 하지 않았나. 윤리 준수 교육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의원들에게 제대로 인지만 시켜도 일정 정도 예방 효과는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은 윤리 교육 자체가 없는 게 현실이다.”

■ 체포동의안 38건 중 8건만 가결, 비리 혐의 의원 방패막이로 악용

국회 윤리특위가 지난 1월 27일 전체회의에서 의원 징계안을 상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회의원 면책특권은 의원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되더라도 실질적 징계를 피할 수 있는 명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또 다른 특권 중 하나인 불체포특권도 마찬가지다. 현역 의원이 형사 책임을 피하는 방패막이로 오·남용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헌법 제44조에 따라 국회 회기 중에만 불체포특권이 보장된다는 점을 이용해 임시국회를 소집하거나 회기를 연장하며 의원 체포를 원천 봉쇄하는 등 ‘방탄국회’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국회가 쇄신안이라며 가장 먼저 꺼내는 카드 역시 불체포특권 포기론이었다.

불체포특권은 국회 의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의회의 감시와 견제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명문화됐다. 그런 만큼 이런 ‘특권’이 삼권분립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노동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은 “불체포특권은 의원 개인이 아니라 의원‘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나친 특권이란 지적도 많지만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의 독립적 입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와 사법부 등 외부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불체포특권이 그동안 의원 개인의 비리를 감싸는 방패로 악용돼 왔다는 점이다. 2003년 국회의원 7명이 100억원대의 SK 비자금을 불법 수수한 의혹이 불거졌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모두 부결된 게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저축은행 비리 혐의를 받은 의원 등이 불체포특권을 앞세워 구금을 피해 가는 사례가 잇따르자 불체포특권을 폐지 또는 축소하라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2000년 16대 국회 이후 현재까지 본회의에 상정된 의원 체포동의안 38건 중 가결된 동의안은 8건(21.1%)에 불과하다. 대부분 부결(31.6%)되거나 철회 또는 임기 만료로 폐기(47.4%)되기 일쑤였다.

미국·독일 등 일찍이 의회 제도가 자리 잡은 국가들은 대의민주주의 실현이란 명목하에 불체포특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반역죄나 치안 방해죄 등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 상·하원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나치 독재를 경험한 독일도 국정의 감시자인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반면 프랑스는 불체포특권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국가 중 하나다. 프랑스 의회는 당초 불체포특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했지만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1995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의회 의장단만 동의하면 의원 체포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불체포특권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 노동일

「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 전문위원과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과 중앙선관위 선거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