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역설’에 원자재 베팅하고 수억달러 번 헤지펀드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에 올 초 이후 주식시장의 표정은 어둡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돈을 번 헤지펀드들이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고 보고 미리 베팅한 운용사들이다.
(사진=AFP)
우크라이나 전쟁 만나 에너지 등 원자재 ‘급등’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업계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미국 뉴욕의 헤지펀드 운용사인 소로반 캐피털 파트너스가 2월 이후 최소 수억달러를 벌어들였다고 전했다. 캐슬 훅 파트너스와 필그림 글로벌도 큰돈을 벌었다고 전했다. 이밖에 바이슨은 소규모 석유 및 가스 생산업체에 투자해 올해 첫 두 달 약 30%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들이 돈을 번 것은 에너지 가격 급등을 예상하고 관련 자산을 미리 사두었기 때문이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에너지 업종은 올 초 대비 이날까지 37% 상승했다. S&P500 지수는 같은 기간 12% 하락했다. 이에 지수와 에너지 업종 간의 수익률과의 차이는 49%포인트로 지난 30년 이후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원자재인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장중 기준 최근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이후 원자재 가격은 더 올랐다. 서방국들이 러시아를 규탄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등 원자재를 수입하지 못하게 한 조치가 공급 불안을 자극한 것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밀 등 원자재의 전 세계 공급량 중 10% 이상이 러시아에서 나온다. 러시아는 또 비료에 들어가는 탄산칼륨의 주요 생산국이고 옥수수도 대량 생산하고 있다.

헤지펀드, ‘친환경 역설’ 감안한 원자재 상승 “아직 초기 단계다”

헤지펀드들은 앞으로도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친환경 재생 에너지 전환기에 화석연료를 필두로 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필연적일 거라는 게 핵심 이유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해 하반기 유럽 지역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것이 있다.

유럽은 과감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을 도입해왔다.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를 통해 기업별로 연간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을 제한하고 있다. 이같은 정책을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원유와 석탄 등을 만드는 기업들도 공장을 추가로 짓는 등의 무모한 투자를 자제해왔다.

문제는 지난해 겨울은 평년에 비해 바람이 불지 않아 애초 예상보다 풍력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는 점이다. 탄소 배출량 규제 탓에 맘 놓고 석탄을 사용할 수 없는 유럽은 그나마 배출량이 적은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찾았고 가격은 치솟았다. 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어설프게 구축해 놓고 동시에 화석연료는 쓰지 못하는 정책을 도입했다면 언제고 이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친환경의 역설이다.

골드만삭스의 에너지 애널리스트 출신인 에릭 만델블라트 소로반 캐피털 파트너스 창립자도 작년 말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은 이유에 주목한 뒤 원자재 관련 자산 투자 비중을 늘렸다. 재생 에너지 전환 과도기에 화석연료에 대한 가치가 오히려 더 커진 친환경의 역설을 구조적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만델브라트 창립자는 연례 서한에서 “우리는 투자 기회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 바이슨의 조쉬 영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수급이 불일치되는 심각성과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거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고준혁 (kotae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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