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건축을 넘나드는 강예린, 이치훈(下)



[효효아키텍트-94] 공유주택 일명 토끼집(The Rabbit. 2015)이 위치한 서울 남가좌동은 단독주택의 박공지붕과 이 지붕을 흉내 내어 옥상 패러핏 옆에 처마처럼 기와를 붙인 다세대 주택의 정체 모를 외관이 함께 공존한다. 필로티 다세대주택이 드물고, 건너편에 뉴타운 아파트들이 함께 있는 생경한 장면이 설계의 모티프가 되었다. ‘누적되어 온 모여 살기의 시간성’이 주제가 되었다.

미색의 기울어진 벽돌 매스 두 개가 솟아 있어 토끼집(The Rabbit)이라고 불린다. 단독주택 두 채가 나란히 공중에 올려 있는 모습이다. 강예린, 이치훈은 ‘주거지의 밀도는 숫자의 공학을 넘어서 모여 살기의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도시의 밀도와 삶의 밀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 건축이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파주 Studio M / 사진제공 =신경섭 파주 출판도시 Studio M(2017)은 영상 특수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의 스튜디오 및 사무실, 기숙사로 계획된 건물이다. 필지가 삼각형으로 한쪽 모서리에 두 개의 간선도로가 예각으로 교차한다. 대지로 접근하는 어느 방향에서도 정면성을 갖기 힘든 조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건축물은 반원 형태로 배치되었다. 각 층이 동일한 방식의 평면형식으로 구성되고, 위로 갈수록 조금씩 외부로 볼륨을 키워가며 대지의 조건에 단순하게 대응한다. 이를 통해 건물은 도시에 순수한 형상과 부피만을 드러내도록 한다. 예각의 간선도로가 교차하며 돌아가는 입면의 경우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시선의 흐름과 운동성을 반영하도록 하였다. 휘어진 면을 따라 가로로 긴 창과 테라스를 계획하고 외벽 마감으로 쓰인 벽돌이 점진적으로 스크린화되며 테라스의 난간이 되거나, 창을 감싸는 더블스킨이 되어 덩어리감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M사옥은 내외부의 경계를 극명하게 분절하고 형태만을 건축의 의도로 드러냄으로써 도시에 대응하는 하나의 태도를 보여준다.

신촌 청년문화 전진기지 / 사진제공 = 신경섭

서울 신촌 청년문화 전진기지(2019)는 서대문구의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복합문화 공간이다. 인근의 홍대·망원동과 비교, 젊은 층을 유입하려는 목적의 건축을 원했다. 공모 당시에는 제한이 없었으나 건축도 파빌리온도 아닌 그 무엇과 공원 사이로 개념이 바뀌었다. 재설계를 해야 했다. 문제는 매스를 배치하는 위치였다. 대안을 100가지 넘게 검토했다. ‘청년’이라는 주제는 옵션이었다. 공원과 열려 있는, 소통되는 무엇이었다. 건축가들은 파빌리온 작업을 많이 했기에 창과 벽을 없애는 방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놓아야 되는지 고민했다. 강관을 금속처럼 보이지 않게 노력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다. 골목마다 들어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은 과거 동네 공장이 가득했던 후락한 성수동의 이미지를 뒤바꿨다. <성수 싸일로: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는 필지들이 큰, 성수사거리 인근 2711.51㎡ 규모의 준공업지역으로 금속, 패션, 수제화 등 사업자들이 입주하는 아파트형 공장이다. 기존 건물의 적벽돌 벽체만 보존하며서 관련 업종의 서비스 공간을 전면에 배치하는 설계 개념이다. 이를 위해 이동 수직동선을 바깥으로 배치했다.

신촌 청년문화 전진기지 조감도 / 사진제공 = 에스오에이 브릭웰(Brickwell. 2020)이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은 조선 시대 창의궁 터였다. 숙종의 차남으로 태어난 영조의 잠저(潛邸)가 있던 곳이다. 잠저는 왕세자(王世子)와 같이 정상법통(正常法統)이 아닌 사정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 필지로 개발되었다. 건축주는 고사한 ‘백송 터에 정원을 가진 사옥’을 원했다. 백송 터 주변에는 여러 그루의 백송이 심어져 있다.

건축가는 어디를 어떻게 비워내느냐에 따라 거주자와 방문자가 각각의 경험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건물을 관통하는 중정을 만들고 1층을 필로티로 만들어 백송 터로 열린 형태로 설계됐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민원 제기하던 이들이 비워낸 1층에 정원이 들어서자 작업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어차피 건폐율을 맞추기 위해서도 공간을 비워야 했다. 직사각 안에 원형의 평범한 평면이다. 조경 전문업체는 야광나무, 수련, 털부처 등 대부분 꽃이 피면 하얀색 계열의 수종을 선택했다.

브릭웰 / 사진제공 = 신경섭

브릭웰 / 사진제공 = 신경섭 건축가로서 수공간 정원은 어려운 주문이다. 정원을 백송 터와 어울리는 북쪽에 배치키로 하고 뷰를 끌어들이도록 벽돌로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는 원칙을 세웠다. ‘가든’은 ‘내가 즐기는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퍼블릭 가든’의 성격을 갖도록 유도하였다. 건축가는 이 정원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정원을 아래에 두고, 네모난 건물의 일부를 꼭대기(4층)까지 원통형으로 뚫었다. 이 뚫린 원형 중정을 둘러싸고 층마다 테라스가 있다. 여기서 정원을 내려다보면 우물(well) 속 같다.

벽돌 사이에 모르타르를 채워 쌓는 습식, 벽돌이 구슬인 양 파이프에 꿰듯 쌓는 건식 공법을 함께 썼다. 4층 천장은 박공 형태로 모두 건식 벽돌 시공으로 완성됐다. 원하는 방향대로 벽돌을 잘랐다. 벽돌은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각도에 따라 물결치는 것 같다. 시공사를 잘 만났다. 벽돌공·석공·금속팀 등과 협의하며 디테일을 풀어갔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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