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걸려보니…"이 고통이 감기라고요?"[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기분 나쁜 몸살에서 찢어지는 목 통증으로, 다시 극심한 피로감과 기침으로…코로나19(오미크론)에 걸려 격리되고 비로소 치유되기까지의 고된 기록,감기라 여기고 근무 다 시키더라고요” 호소하는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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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고 빨간 두 줄, 코로나19 양성. 병원서 신속 항원 검사 양성을 받고, 확인차 집에 와서 다시 자가 진단 키트로 코에 깊이 찔러보니(눈물 찔끔남) 양성 판정이 떴다./사진=울고 싶은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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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님은 코로나(오미크론) 양성이네요.”(의사)

“예? 집에서 자가 키트할 땐 음성 나왔는데요. 세 번이나요.”(기자)

“그건 원래 정확히 나오기 힘들어요. 자기 코를 깊숙이 찌르기 어렵지요?”(의사)

“네, 그죠… 아프잖아요(눈물 난다고요).”(기자)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난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요즘 확진자 많은데 우린 그래도 잘 피하고 있어”, 아내에게 그 말을 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입방정이 화근인가. 먼 얘기라고 여겼는데 순식간이었다. 백신도 3차 부스터샷까지 맞았는데, 그것만 너무 믿었나.

진료실을 걸어 나오며 ‘어디지, 어디서 걸렸지’를 반복해 되뇌었다. 카페에서 근처에 앉았었던, 수다 많던 아저씨 두 명일까. 파스타 가게서 뒤쪽에 앉아 침 튀기던 아주머니 두 분인가. 그럴 힘도 없이 아파서 생각도 멈춰뒀다.

병원서 나오며 아내 손을 잡으려다 멈칫했다. 아내는 ‘음성’이었다. 근데 증상은 나와 비슷했다. 아내는나도 걸렸는데 아직 양성이 안 뜬 걸 거야”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확실치 않으니 거릴 둬야 했다.

‘감기’보다 기분 나쁘게, 훨씬 아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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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된 첫날은 방안에 꼼짝 없이 갇혀서 죽만 먹고 지냈다./사진=남형도 기자

4월 초순. 하필 벚꽃 만개를 앞둔 시기인데꽃구경은 끝”이라 푸념하며 집에 돌아왔다. 씻고 방 안에 들어와 문을 꼭 닫고, 전기장판을 켜고 드러누웠다. 몸이 부침개 반죽처럼 바닥에 철퍼덕, 늘어 붙었다.

유일하게 기대한 건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간다”는 말이었건만 웬걸. 기분 나쁜 통증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열나고 힘없고 쑤시는 건 몸살과 비슷한데 정도가 더 심했다.

여기에 목이 아프고 기침이 토할 듯이 나왔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당하기 힘든 피로감이 엄습했다.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 꼼짝 않고 있으니 코가 막혔다. 오른쪽 콧구멍이 막히면 왼쪽으로, 왼쪽이 막히면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아이고”,끄응”하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내가 문 앞에 놓아준 전복죽을 꾸역꾸역 먹었다. 입맛도 없었으나 약을 먹기 위해 애써 입에 밀어 넣었다. 병원 약을 털어 넣고,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일단은 몸살만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창문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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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확진 되었다는 문자도 왔다./사진=남형도 기자 문자

죽은 듯 잠을 잤다가 깨니 회사 메신저가 와 있었다. 부장 메시지였다. ‘남형도 기자 확진/ 격리 해제 4월 11일 24시 / 업무 복귀 4월 12일.’

일주일의 강제 휴가가 시작됐다. 잠시나마 ‘휴가’라 여긴 건 빨리 회복해서, 며칠이라도 쉬는 걸 즐기고 싶단 마음에서였다. 그래도 3일 정도면 낫겠지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밤까지 해열·진통제를 먹으며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강조한 가습기만 고요히 방에서 돌아갔다. 점점 습하고 답답한데 무언가 할 엄두도 안 날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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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는 필수입니다. 다행히 유급 휴가 7일이 주어졌다. 이 역시 취재해보니 무급 휴가인 곳, 연차를 쓰라고 하는 곳 등 여건이 다 달랐다./사진=남형도 기자 메신저 화면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비몽사몽에 다시 깨니 몸살 기운이 좀 가셨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하도 물을 마셨더니 방광이 터질 것 같아 마스크를 쓰고 화장실에 갔다. 아내는 곤히 자는 듯했다. 거실에 나오니 좀 살 것 같았다.

몸살 기운이 좀 사라졌다. 그제야 남은 엿새가 걱정됐다. 방 안에서 뭐 하며 시간을 보내나 생각했다. 한 집에서 아내와 계속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도 걱정이었다(잘 보이려 쓴 거 아님). 새벽에 방 창문을 살짝 열고 얼굴을 사이에 끼운 채 공기를 마셨다. 시원했다.

이번엔 코 맵고 시큰, 매일 ‘증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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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오미크론은 증상이 실시간으로 바뀌어서 약 처방을 계속 받아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다음 날에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도 ‘확진’ 됐다고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확진된 건 안타까웠지만, 차라리 함께 걸리는 게 좋겠다 싶었다. 답답한 방구석을 벗어나 함께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 마스크를 벗고, 코로나로 묶인 부부 공동체가 된 걸 기념하며 포옹했다.

그리고 증상은 하루 만에 바뀌었다. 이번엔 인후통이 극심해졌다. 코가 청양고추 가루 팩을 붙인 듯 맵고 시큰하고 얼얼했다. 두 손으로 자꾸만 문지르게 됐다. 목은 잔뜩 부어서 따끔따끔하고 가래가 자꾸 끼고 기침이 간헐적으로 나왔다.

전날과 증상이 달라지니 지어온 약 효과가 떨어지게 됐다. 게다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아내 약도 지어야 했다. 진료받은 병원에 전화하니 2시간 뒤 전화가 왔다. 증상을 말하니 약을 다시 지어주겠다고 했다. 약은 어떻게 받으러 가냐 물으니, 의사는처방전을 약국에 줄 테니 거기로 오라”고 했다.

찾아보니 코로나 확진자도 4월부터는 약을 직접 받을 수 있단다. 불타는 코와 목을 달래면서 바깥에 나왔다. 사람들이어딜 코로나 확진자가 돌아다녀?”하며 눈으로 쏘아보는 것 같아 괜히 움츠러들었다. 차를 타고 약국으로 가서, 약만 빠르게 받아서 집에 돌아왔다. 약값이 무료라 좋았다.

목에 면도칼을 삼킨 듯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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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통증을 줄이려고 발악한 애달픈 흔적들./사진=남형도 기자

사흘째가 되자 이젠 목 통증이 극심해지고, 기침이 미친 듯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목에 면도칼을 삼킨 것처럼 찢어지는 고통”이라 표현했는데 그게 딱 맞았다. 병원 약을 먹고, 배·도라지청을 주문해 따뜻한 차를 마시고, 소금물로 양치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밤만 되면 기침이 미친 듯이 나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베개를 높여보라고 해서 높여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누우면 목이 간질간질, 자극돼 기침이 토할 것처럼 쏟아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졸립고 아침에도 피곤했다.

SNS를 통해 코로나에 먼저 걸린 ‘선배님(독자님)’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간 잘 몰랐던 온갖 정보가 쏟아졌다. 탄* 가글, 호*스 같은 목캔디, 용*산, 베*딘이나 목* 같은 인후 스프레이, 꿀물이나 꿀 삼키기, 머리맡에 물수건 두기, 프로*리스 원액 혹은 스프레이 등이었다.

다음날, 병원에 전화해 약을 추가 처방받았다. 기침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했더니 수면제까지 처방해줬다. 목 통증 완화를 위한 제품을 사려고 봤더니, ‘품절’이라고 했다. 약국 세 군데를 더 다닌 뒤에야 프로*리스 스프레이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지독하게 안 나아지던, ‘목 통증’과 ‘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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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가 중요한 건 맞는 것 같다. 목이 마르면 더 아프니./사진=남형도 기자

찢어질 듯한 목 통증기침, 가래와 콧물 등은 지독히도 나아지지 않았다. 별수 없이 시간에 맡긴 채 그냥 할 수 있는걸 다 했다.

괜찮아지는가 싶다가 토할 듯이 기침하고 가래를 뱉는 게 반복됐다. 말을 조금만 해도 기침이 다시 튀어나왔다. 목은 무언가 걸린 느낌이 계속됐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격리가 끝나기 날이 되어서야 밤에 기침이 좀 잦아들고 목 아픈 게 다소 나아졌다.

지나고 보니 중요한 건 증상에 따라 맞는 약을 바꿔가며 처방받는 것(잘 맞는 약이 중요), 가습기를 항시 잘 틀어 습도 유지를 해주는 것, 따뜻한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 잠자기 전엔 음식을 먹지 않는 것 등이다. 아울러 자극적인 음식은 목에 안 좋으니 피하는 게 좋단다(모르고 떡볶이 같은 걸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먹고, 좀 괜찮다고 설치거나 무리하지 않고, 약 먹고 잠을 자주 푹 자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어느 정도는 시간이 지나야만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일주일 격리가 끝나도…’극심한 피로’와 ‘기침’은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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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코비드 후유증으로 뻗어 있을 때, 똘이(반려견, 말티즈, 귀여움)가 가만히 다가와 내 이마에 엉덩이 찜질을 해주었다. 힐링./사진=귀여운 건 못 참는 남형도 기자 아내

4월 11일 자정을 기해 ‘자가격리’가 드디어 해제됐다. 열두 시가 넘은 고요한 시각에, 오랜만에 바깥에 나가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벚꽃잎이 이미 많이 떨어져 있었다(슬픔). 그래도 모처럼 밤공기를 쐬니 살 것 같았다.

그걸로 끝이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다음 날부터는 근무를 시작했고, 취재도 하고 기사도 썼다. 저녁이 되자마자 금방 녹초가 되어 뻗었다. 역시 처음 느껴보는 극심한 피로와 무력감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밤 9시가 되기 전에 나도 모르게 졸다가 잠을 잤다. ‘어?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하다가 또 잤다.

만사 다 귀찮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제일 좋았다. 참고로 원래 성격은 뭐든 제대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이 낯설고도 길고도 감당 안 되는 피로와 무진장 싸워야만 했다. 강한 정신력으로도 이기기 힘든 정도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거의 격리 해제 후 2주가 넘어서야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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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는 롱 코비드 상황을 온몸으로 재연해준 똘이, 8세./사진=남형도 기자

기침은 더 오래가고 있다. 확진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가끔 터져 나온다. 말을 할 때마다 목의 무언가가 건드려져, 기침이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공공장소에 가거나 하면 눈치가 보여 사람이 적은 장소로 가야만 했다.

코로나를 앓는 동안 도움을 많이 받은 약사 유튜브 채널(메디슨맨TV)에선, 자가격리 해제 후에도 일주일간은 이런 행동을 피하라고 했다.

1.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멍한 증상 등이 심한 경우 병원서 진료받을 것.
2. 가당음료(콜라 등)나 튀김, 가공육류(소시지) 등 음식 섭취 주의(염증이 더 오래가게 만듦).
3. 다이어트, 흡연, 음주 금지.
4. 적어도 열흘은 운동 금지. 열흘 이후에도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

후각 잃고, 기침하다 갈비뼈 부러지는데…”감기 아냐?” 일?출근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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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가 풀린 뒤 오랜만에 간 카페에서 바라본 벚꽃 광경. 많이 떨어져서 아쉬웠지만 그래도./사진=남형도 기자

이리 상세히 알리는 이유가 있다. 최근 코로나19(오미크론)가 증상이 가볍다고만 많이 알려진 탓에,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단 걸 전하고 싶었다.

실제 코로나에 걸린 뒤 증상이 심했다는 이들도 인터뷰했다. 그들도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1억을 준다고 해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은진 독자님)
“감기랑은 정말 다른 아픔이었다. 기침할 때 목이 찢어질 것 같아 잠도 안 왔다.”(H 독자님)
“2주간 열이 38도였고 격리 해제 다음 날 산책하다가 실신했다.”(린다 독자님)
“아직도 냄새를 잘 못 맡고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어지럽다.”(정민 독자님)
“기침이 심해 오른쪽 갈비뼈 7번이 부러졌다. 너무 아팠다.”(두리 독자님)
“코로나 때문에 살면서 처음 장염에 걸렸다.”(고고 독자님)
“입에서 바닷물을 삼킨 것 같은 미각이 계속 느껴진다.”(GG 독자님)
“환후각이라 하는데, 담배 냄새가 코에서 나서 힘들다.”(Na 독자님)
“밤에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일주일만에 500ml 물을 40병 마셨다.”(지윤 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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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게 먹은 약들./사진=남형도 기자

심하고 힘든 증상이 많음에도, 감기몸살과 비슷하단 다수의 편견과 오해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교사 A씨는 “오미크론은 증상이 안 심하니 집에서 수업과 업무 모두 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다들 그렇게 하는데 안 하면 꾀병처럼 보일까 봐, 일을 모두 처리했다.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직장인 B씨는 “‘요새 다 걸려, 감기랑 비슷해’, 이렇게 말하다 보니 증상이 엄청 심했는데도 재택으로 평소처럼 업무 처리를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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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간호사는 코로나19 현장에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 한 명에게 주어진 환자가 너무 많아 식사와 화장실을 포기하면서까지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결국에는 환자를 제대로 간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묵묵히 일하던 동료가 결국 환자 곁을 떠나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진=뉴스1

의료진은 더 심했다. 간호사 B씨는 “의료인은 자가격리 5일, 심지어 3일로 바뀌었다. 인원 부족에 대한 해결책을 격리일수를 줄이는 걸로 해결하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5일 격리 후 출근했는데 기침이 계속 나왔다. 다른 직원들도 인후통으로 먹지도 못하는데 출근했다. 이런 데 환자를 보는 게 맞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간호사 C씨도 “격리 기간 내내 앓다가 5일만에,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출근했다”고 했다. 일하는 내내 가래가 올라오고, 늑골이 아프도록 기침이 심했단다. 그는 “가래가 올라와도 마스크를 벗고 뱉을 수도 없었고,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며 일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간호조무사 D씨도 “하루에 100명 넘는 확진자가 다녀가서 코로나에 안 걸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병원 원장이 원해서, 보건소에 확진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너무 힘들어서 며칠 쉬었는데 그걸로 아직도 눈총을 받고 있다”고 했다.

격리 끝났다고, 다 회복된 게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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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센터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스1

격리가 끝난 뒤의 후유증도 생각보다 더 다양하고 심각했다.

“전정신경염이 생겼습니다. 한 번씩 어지럽기 시작하면 무서워져요.”(신모 독자님)
“저희 어머니는 코로나 이후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에 걸리셨어요.”(L 독자님)
“가슴 통증이 간간히 있고 뇌가 물에 잠긴 것처럼 머리가 무겁고 멍해요.”(은지 독자님)
“퇴근 후 친구 만나는 것도 사치가 됐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듭니다.”(린다 독자님)

그러니 ‘격리 해제=완치’라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걱정도 많다고 했다. 예컨대, 자가격리가 7일이면 그 이후엔 다 나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 향후 아예 격리 의무가 없어지면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안일해져,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직장인 E씨는기침이 한 달 동안이나 지속 되어서 너무 곤욕을 치렀다”“서비스직인데 손님들이 꺼려하더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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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강사 F씨는 “격리기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자가키트 양성이 나왔는데, 당장 출근하라 해서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큰 의문과 걱정이 든다”고 했다.

격리가 해제되면 완치된단 생각 때문에 또 다른 감염이 발생하기도 한단다. 직장인 F씨는 “격리해제 후 바로 식사를 같이 한다거나, 상사가 같이 먹으라고 하는 등 조심하지 않는 분위기로 인해 또 다른 코로나 감염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실제 정부의 ‘격리해제 후 행동지침’에서도 3일간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출은 가능하지만, KF94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중 이용 시설 등 감염 위험이 높은 시설 방문도 제한하고, 사적 모임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가격리 방침’에선 코로나 증상이 발현된 날로부터 5일까지 최대한 외부 활동을 자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예컨대, 4월 1일에 코로나에 확진되면 8일에 격리 해제다. 그렇지만 증상이 6일부터 발현됐다면, 11일까진 바이러스 전파력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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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에 감염된 환자가 입원한 병동에서 근무중인 간호사가 필요 사항을 메모로 전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에필로그(epilogue).

모든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엄마가 제일 아팠단다. 가족들 밥 챙기고 집안일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격리가 끝난 뒤에도 링거를 두 번이나 맞았다. 그가 말했다. “이래서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고 하나 봐요.”

가장인 어떤 아빠는 코로나에 걸린 뒤에도 감기약으로 버텼다. 자영업자인데 확진되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생겨서 그리 아프게 참으며 지나갔다. 이를 걱정한 아들은 아빠가 이해가 안 되었으나, 지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먹고 사는 생(生)의 절박함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다고.

대학병원 의사인 남편은 정년이 코 앞인데도, 코로나에 걸렸음에도, 5일 만에 출근해야 했다. 3월 초에 걸렸는데 아직도 많이 피곤해한단다. 또 간호사들 사이에선 코로나에 걸리면 “축하한다, 쉬고 와”라는 말도 있단다. 오죽하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있었다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감염됐고 숨졌다고, 결국엔 잘 지나갔다고. 그건 단지, 이겨내기 위해 묵묵히 애썼던 이들 덕분이었다고.

언젠가 다 끝나더라도 잊히진 않게, 이렇게나마 기록으로 꼭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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