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價에 엇갈리는 성적표..정유 ‘웃고’ 석화 ‘울고’

에쓰오일 울산공장의 잔사유 탈황시설 전경. 원료인 중질유에서 유황 등 대기오염 물질을 제거해 초저유황 경유, 저유황 선박유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자료사진)ⓒ에쓰오일

국제유가 급등에 정유업계와 석화업계가 상반된 1분기 성적표를 받아들 전망이다.

정유회사들은 재고평가이익 효과와 높은 정제마진으로 역대급 실적이 예상되는 반면, 석유화학 회사들은 높아진 석유화학 원료 가격으로 인한 제품 마진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추정치)는 6204억원으로, 작년 1분기와 견줘 23.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중 정유 부문이 전년 동기 대비 103~112% 증가한 8440~8810억원으로 전망돼 전체 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추정된다.

에쓰오일의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6538억원으로 전년 동기(6292억원)와 비교해 3.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6500억원을 넘어선다면 2016년 2분기(6408억원) 이후 최고 실적을 달성하게 된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정유 부문에서 지난해 보다 개선된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들의 실적 호조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재고평가이익이 증가한 데 이어,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을 크게 상회한 영향이 크다.

정유사는 원유를 매입한 후 정제 과정을 거쳐 통상 2~3개월 후에 판매하기 때문에 유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면 상대적으로 싸게 산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올라 이익을 본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70달러 중반대였던 원유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 등 지정학적 이슈로 한 때 130달러를 돌파하는 등 말그대로 ‘고공행진’하며 이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실제 WTI(서부텍사스유) 기준 올해 초 76.08달러에서 3월 11일 현재 109.33달러로 상승하며 약 2개월 반 동안 43.7%(33.3달러) 급등했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도 42.6%(33.7달러)나 상승했다.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연초 대비 2배 이상 오르며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이달 둘째주 기준 배럴당 12.1달러를 기록하며 전주(5.7달러)와 비교해 2배 이상 뛰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의 비용을 뺀 가격으로, 통상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판단하는 데 이를 크게 상회한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은 “유럽 수입의 약 20~50%에 달하는 러시아산 공급차질 우려로 등·경유 정제마진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유럽 내 공급차질로 강세 자체는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LG화학 여수 NCC 공장ⓒLG화학

반면 석유화학사들은 치솟은 원재료값에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의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추정치는 8454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40.0%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사업 선방에도 석유화학(기초소재) 부문이 부진하며 1조원을 크게 밑돌 것이라는 관측이다.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의 1분기 영업이익 역시 전년 동기와 비교해 75.9%, 39.3% 급감한 1502억원, 1546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프타 가격 강세로 원료비가 크게 오른데다, 수요도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이익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석화 산업의 주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에서 정제돼 나오며, 평균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나프타 비중은 70%를 웃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는 만큼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서 석화업계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프타 가격이 상승하자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축소됐다. 올 1분기 평균 스프레드는 271달러로 작년 3분기 335달러, 4분기 377달러와 비교해 19.1%, 28.1% 낮다. 1분기 스프레드가 하락했다는 것은 원재료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화학사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시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화학사 역시 “미국-러시아 등의 상황을 주시하며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부진은 정유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선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 부문 영업손실이 1분기에만 13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더욱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규모 글로벌 에틸렌 증설이 예고되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틸렌은 합성섬유나 합성수지를 만드는 기초원료로 주로 쓰이는데, 기술장벽이 낮아 중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설비 증설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IHS마킷 등 글로벌 주요 기관은 에틸렌 설비가 지난해 1054만t에 이어 올해 919만t 증설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스프레드 축소, 고정비/변동비 상승, 판매량 감소 등을 감안해 1분기 화학업체들의 이익 눈높이를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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