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술탈취 없나, 못 잡나..’서면 미교부’만 잡는 공정위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유용감시팀이 최근 1년간 제재한 사건의 80%가 단순한 절차 위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협력업체 기술 탈취·유용 행위에 대한 제재가 부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8일 공정위 사건처리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3월 이후 심의가 완료된 기술유용감시팀 사건은 총 10건이다. 이 중 8건은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혐의다. 하도급법은 기업이 품질 검증 등을 위해 설계도면 같은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서면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요구 목적과 권리귀속 관계를 명확히 하라는 취지다. 8건은 이런 절차적 요건을 어긴 사건이다. 기업이 실질적으로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앗았거나 이를 통해 이득을 봤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술 유용 혐의로 제재한 사건은 2건이었다. 각각 엘에스(LS)엠트론과 대우조선해양으로, 두 기업 모두 10억원 이하의 정액과징금이 부과됐다. 검찰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위의 고발 지침을 보면, 기술 유용 행위의 경우 법 위반의 정도가 중대하거나 그 동기가 고의적이면 고발하도록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2건 모두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기술유용감시팀이 신설된 직후인 2018∼2019년 공정위가 한화·두산인프라코어·현대중공업 등을 고발했던 것과 대비된다.

업계에서는 대거업의 협력업체 기술 탈취 행위가 여전히 만연하다는 지적이 많다. 피해 기업들이 몸을 사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다 보니 공정위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기도가 지난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 45곳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 중 9곳이 기술 유용·탈취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한 부품업체는 원사업자 쪽에 전달한 기술 브리핑 자료가 다른 경쟁업체로 넘어갔지만, 자칫 물량이 끊길 수도 있다는 판단에 신고나 소송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강선희 경기도 기업거래공정팀장은 “국내에서 수요처가 결국 삼성과 에스케이(SK)뿐이기 때문에 더욱 신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신고에 의존하다 보면 법 집행이 약화될 수 있다고 보고, 앞으로는 직권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안남신 기술유용감시팀장은 “기술유용의 경우 아직까지는 피해 기업이 신고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업계 간담회 등을 늘리고 직권조사 중심으로 법 집행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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