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자이언트스텝 다음날..폭락한 증시, 커진 경기침체 공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침체 공포가 되살아났다.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우려한 미국이 28년 만에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직후 영국, 스위스까지 긴축 스텝을 가속화하면서다.

특히 오랜 기간 양적 완화 방침을 고수하던 스위스마저 기습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시장에서는 ‘도미노 긴축’이 본격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칫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외자 유출·환율 급등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에 주요국의 긴축 시계도 더 빨라지는 모양새다.

도미노 긴축에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3만 선 아래로 주저앉았고 코스피는 장중 2400이 무너졌다.

16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지수는 전장 대비 741.46포인트(2.42%) 떨어진 2만9927.07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다우지수 3만 선이 무너진 것은 작년 1월 이후 1년5개월 만이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 역시 각각 3.25%, 4.08% 하락 마감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 증시도 각각 3%안팎씩 미끄러졌다. 17일 한국 시장에서 코스피는 개장 이후 2% 넘게 떨어지며 1년7개월 만에 2400선을 내줬다. 코스닥도 800선을 내주며 780대로 주저앉았다.

전날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강력한 물가 안정 의지에 매수 버튼을 눌렀던 시장이 불과 하루 만에 공포로 뒤덮인 셈이다. 뉴욕증시의 블루칩으로 구성된 다우지수는 전 고점에서 19% 하락해 약세장 진입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이미 약세장인 S&P 500지수와 나스닥지수의 전고점 대비 하락률은 각각 24%, 34%로 더욱 깊어졌다.

◆美 이어 도미노 긴축…스위스 기습 인상에 “울트라 비둘기도 돌아섰다”

특히 Fed의 뒤를 따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5연속, 스위스중앙은행(SNB)이 15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도미노 긴축 우려는 한층 커졌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전 세계 경제를 후퇴시킬 것이란 전망이 금융 시장 전반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날 SNB는 기준금리를 기존 -0.75%에서 -0.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당초 동결이 예상됐던 것과 달리 15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 인상 결정을 내린 것이다. 토머스 요르단 SNB 총재는 “높은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추가 금리 인상 또한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스위스가 그간 주변국들의 긴축 행보에도 양적완화를 고수해온 소위 ‘울트라 비둘기’ 진영이었다는 점에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Fed의 고강도 긴축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까지 7월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에서 환율·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AFP통신에 따르면 ‘세계 자산시장의 큰 손’으로 불리는 SNB는 스위스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40% 규모인 1조달러(약 1293조원) 이상을 전 세계 금융계에 투자 중이다.

같은 날 BOE도 기준금리를 1.25%로 0.25% 올렸다. 5연속 인상을 통해 영국의 금리는 2009년1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BOE는 오는 8월에도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헝가리 중앙은행 또한 1주 예금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한국 역시 미국과의 금리 역전이 임박했다는 관측 속에 인상을 서두를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전쟁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금리 덮친다… 경기침체 우려 커져

문제는 이러한 도미노 긴축이 글로벌 경기에 미칠 여파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고환율, 고금리까지 덮치며 경제 체력이 취약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금융위기가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세계 통화정책을 좌우하는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신흥국 외자 유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브리엘라 산토스 JP모건 글로벌시장전략가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생각보다 더 매파적”이라며 “이는 연말 또는 내년 초 경기침체의 확률을 높인다”고 전했다. 루미스세일즈의 안드레아 디센소 부사장은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75%라고 내다봤다.

최근 경기침체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미 경제지표에서 부진이 확인된다. 이날 공개된 5월 신규 주택 착공 건수는 전월 대비 14.4% 줄어 13개월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금리 상승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전반적인 건설경기 역시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6월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의 제조업 활동 지수(-3.3)는 마이너스로 전환, 위축세를 나타냈다.

여기에 최근 Fed의 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치솟으며 부동산시장 냉각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30년 만기 모기지 고정 금리는 5.78%로 2008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0.55%포인트 뛰어오른 것이다. 미 모기지은행협회(MBA)의 마이크 프래탄토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주택 수요가 상당히 가파르게 줄었다”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인더스트리얼 얼라이언스 인베스트 매니지먼트의 세바스티안 맥마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이미 경기침체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것이 우리의 기본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이날 공개된 유고브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 56%는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했다고 답변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나머지 22%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통상 경기후퇴는 2개 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 감소로 정의된다. 미국에선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공식적으로 경기후퇴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잇따른 경기침체 우려에 선을 그었다. 그는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not inevitable)”라며 “우리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포지션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대 최저 수준인 3.6%의 낮은 실업률,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의 경제 성장세를 배경으로 꼽았다.

아울러 41년 만에 가장 높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이른바 ‘바이든 책임론’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이 내 잘못 때문이라면 인플레이션이 (미국보다) 더 높은 세계의 다른 주요 국가의 경우는 왜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책임론이 커지면서 최근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급락한 상태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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