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제 개편’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8)

윤석열 정부가 출범 석 달 만에 수렁에 빠졌다. 고물가란 민생위기 앞에서 잇따른 인사참사와 이전 정권 북풍몰이에만 골몰하는 모습에 지지율은 연일 새로운 바닥을 확인하는 중이다. 어쩌면 바닥 뚫기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장관 인선 지연으로 정부가 뒤늦게 일을 시작했는데도, 처음부터 미숙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8월 5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열린 ‘만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개편안에 대한 영유아 학부모 긴급 간담회’에 한 학부모가 아이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새 정부 업무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취학연령을 현재 만 6세에서 만 5세로 1년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고, 대통령은 조속히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취학연령을 하향한다고 알려지자마자, 한 주간 공론장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졸속 추진이란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졌고, 정부 역시 정책 폐기와 고수 사이에서 갈팡질팡 행보를 보였다. 결국 윤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온 8월 8일, 박순애 전 부총리는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은 제 불찰”이라며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직을 사퇴하고자 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첫 교육부총리 지명자였던 김인철 후보자의 낙마에 이어 인사청문회도 없이 부총리로 임명 강행한 지 34일 만에 다시 교육부의 수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이쯤 되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차분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비판 여론 일색이었지만 학제 개편 역시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취지와 장점이 있는 ‘딜레마 속의 정책’이다. 동시에 여러 효과와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는 큰 틀의 제도 개혁이다.

사교육 업체들의 주가 일제히 올라 모든 정책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따라서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딜레마를 직시해야만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부작용 또한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해왔다. 또한 그렇게 정책을 딜레마 관점으로 보면 역설적으로 그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그 방법으로 네가지가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학제 개편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 네가지 방법을 기본 틀로 따져보고자 한다. 첫째, 정책은 ‘조합(policy mix)’이어야 한다. 학제 개편은 교육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으로 본래 여러 정책의 조합일 수밖에 없다. 이번 학제 개편에선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조정’이란 단일 정책만이 의제화됐다.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출발선상의 공정함 보장’이었다. 하지만 취지와 정책의 관계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유치원, 어린이집, 가정보육을 하는 아이들을 1년 먼저 학교에 데려온다고 출발선상의 공정함이 보장될까. 지금 만 5세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공정함을 보장하려면 보육의 질을 개선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공통과정인 ‘누리과정’을 내실화하는 게 우선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을 천명한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과정을 통합)조차 지난 20여년간 제대로 된 진전이 없이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보육의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유보통합을 하느냐가 중요한데도, 이 정부는 유보통합의 로드맵 대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1년 일찍 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큰 틀을 바꾸는 정책을 발표하면서도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는 정책들을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즉 정책을 조합의 관점으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초등학교에서 저학년생들이 적응하기 어렵고, 이 빈틈을 채우는 사교육이 존재하는 형국이다. 실제로 시장의 반응은 노골적이다. 정부의 학제 개편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주식시장에서 사교육 업체들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보육단계뿐 아니라 초등교육에서도 ‘입학연령 조정’보다 시급한 정책들은 차고 넘친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겐 돌봄과 놀이교육이 중요한데도 우리의 공교육은 대부분 교과과정 중심의 ‘40분 강의식 수업’으로 대표되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보다 조기 귀가하는 문제로 많은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시기도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다. 그나마 초등학생의 하교시간을 연장하는 방과후학교, 초등 돌봄교실 등은 법적인 기반도 없이 학교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노동으로 유지되는 현실이다.

초등학교 내 돌봄 기능의 강화는 매우 절실하고도 시급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퇴행의 연속이었다. 이 문제는 공론장에서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교사노조와 돌봄노조의 갈등으로만 치부돼왔다. 지난 정부에서 코로나19 확산기인 2020년 5월, 유은혜 전 교육부총리가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를 ‘학교 사무’로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의 반대로 3일 만에 철회했다. 이처럼 초등학교 차원에서도 해묵은 과제들이 넘쳐나는데, 선행하고 병행할 정책이 무엇인지조차 구분 못 한 채 엉뚱한 입학연령 조정이 불쑥 튀어나온 셈이다.

정책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타이밍’과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번 학제 개편은 타이밍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까지 나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부가 제대로 준비해 발표해야 할 중차대한 정책인 학제 개편이 교육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한두마디 발언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사실상 아무런 준비와 전략 없이 공론화를 시작했다.

심지어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과 박 전 부총리의 발언도 부적절했다. 박 전 부총리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돌봄센터라는 학교보다 낙후된 시설에서 더운 날에 아이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게 가슴 아팠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복지부가 운영하는 ‘다함께 돌봄센터’나 최근 윤 대통령이 방문했다고 알려진 지역아동센터 등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다. 이들은 입학연령을 앞당겨도 여전히 돌봄센터에 머문다. 박 전 부총리의 설명으로 학제 개편은 ‘대통령의 무지에서 출발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해법이 원인이 된 저출생 대책들 이전 정부에서도 입학연령을 앞당기는 학제 개편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온 이유가 ‘입직과 결혼 연령을 앞당겨 저출생에 대응한다’였다. 이런 대응 자체가 우리 사회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을 유지하는 원인이다. 즉 해법이 원인인 셈이다.

무슨 의미냐 하면 사람을 무언가의 수단으로만 삼는 문화로 인해 사람이 불행해졌고, 그 결과가 저출생이다. 대부분 저출생 대책의 취지가 ‘사회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이고, 그동안 교육부가 학제 개편을 추진한 취지 역시 ‘입학연령을 앞당길 테니 빨리 졸업하고 결혼해 애 낳으라’였다. 보육의 질적인 개선, 학교의 돌봄 기능 강화 등 정작 필요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으면서 저열한 인식에서 나온 단편적인 대책들만 난무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이 OECD 평균의 반토막인 0.81명(2021년 기준)을 유지하는 것도 기이하다.

박순애 전 부총리는 이번 학제 개편이 ‘저출생 대응’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당연히 일찍 입학해서 일찍 나와 결혼 연령도 빨라지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저출생 대응 효과)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발언했다. 저출생 대응이 학제 개편의 목적은 아니지만, 효과일 순 있다는 의미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보다 노골적이다. 임 교육감은 지난 8월 3일 “교육부가 추진하는 취학연령 하향 조정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현시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8월 9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저출생이란 문제를 다루는 정책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정부가 이렇게 할 테니 애를 낳아라’가 돼선 곤란하다. 그저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도록, 또한 양육자들이 걱정과 부담을 덜어내도록 정부가 더 책임을 지겠다는 게 메시지의 핵심이어야 한다. 세상의 온갖 문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고등학교 졸업 연령을 1년 앞당긴다고 취업과 결혼, 출산이 빨라진다고 보는 인식 자체도 안이하기 그지없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네 번째 방법은 ‘점검과 보완’이다. 이를 학제 개편에 적용하면 이번 논란에서 드러난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들을 모으며, 시급한 사안들에 대해선 빠른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유아를 학교로 일찍 데려가기보다는 유아가 있는 현장인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보육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원하는 모든 아동이 국가가 제공하는 보육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며 교사 대 학생 수를 줄이고, 국공립 보육시설의 비중을 높이는 게 현장의 오래된 요구이고, ‘출발선상의 공정함’을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또 다른 뇌관인 초등 전일제 박순애 전 부총리가 사퇴한 다음날인 9일, 교육부는 국회에서 진행한 업무보고에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조정안을 제외한 대신에 ‘방과후과정’과 ‘초등 돌봄교실’을 확대하는 ‘초등 전일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정 계획도 구체적으로 나왔다. 오는 10월까지 초등 전일제 추진 방안을 마련해 내년부터 시범 운영하고, 2025년부터 모든 학교에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초등 돌봄교실의 운영시간을 올해는 오후 7시, 내년에는 오후 8시까지로 늘린다고도 밝혔다.

교육부가 초등 전일제를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과정을 보면 학제 개편 때의 실수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초등 전일제가 담고 있는 초등학교 내 돌봄 강화는 학제 개편 못지않은 쟁점 사안으로 이미 교원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첨예하게 갈등했던 의제다. 전교조, 교총, 교사노조 등 교원단체들은 학교가 보육기관이 아니고 교사들의 업무가 가중된다며 방과후과정과 초등 돌봄교실 등의 운영을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돌봄전담사와 방과후과정 교사 등 교육 공무직 노동자들은 지자체로 이관 시 다른 돌봄 복지서비스처럼 민간 위탁의 형태로 운영될 것이고, 그리된다면 종사자 처우와 해당 서비스의 질적인 악화가 필연적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양측이 갈등하는 와중에 초등 돌봄의 강화가 사실상 방치됐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과 취약계층의 돌봄 공백, 격차가 커진 돌봄 불평등 등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핵심적인 문제들을 방치하고 내놓은 저출생 예산이 얼마라는 식의 발표와 논평은 모두 허무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가 그동안 왜 방치됐는지, 정부의 중재가 왜 실패했는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했다. 그랬다면 정책의 발표 방식부터 달랐을 것이다. 이해관계자들과 사전 조율을 거쳐 정책을 발표하거나, 그게 쉽지 않다면 여론의 힘으로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를 돌파하는 전략을 짜냈을 것이다. 또한 여러 보완 정책으로 교원들과 교육 공무직들의 부담을 경감해 반대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을 것이다. 결국 그러지 못했고, 이번 초등 전일제 정책 역시 ‘조합’과 ‘타이밍’, ‘커뮤니케이션’ 등에 있어 모두 실패했다. 애초에 교육부가 직접 국민에게 상세한 자료를 제공하며 정책을 발표하고, 여러 질의에 친절하게 응대했어야 했다. 왜 중요 정책을 정부 부처가 대통령이나 국회에 업무보고하는 방식으로 국민에게 알리는지, 이런 실수를 두 번이나 반복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 전일제 정책은 그 중요성 때문에라도 학제 개편의 길을 가선 안 된다. 일단 초등 전일제는 ‘하루 11시간 아이를 학교에 맡기는 반인권적 정책’이란 프레임부터 넘어서야 한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은 지난 8월 9일 성명을 내 “초등 전일제학교 추진은 만 5세 초등 입학 정책과 마찬가지로 아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박효천 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오전 9시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오후 8시까지 가둬두겠다는 것은 아동학대”라며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짐짝처럼 보관만 하겠다는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프레임은 논리적으론 간단히 넘을 수 있으나, 공론장에서 이 프레임을 벗어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논리적으론 ‘아동학대 프레임’은 ‘초등 돌봄 확대의 불가피성’으로 넘을 수 있다.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당장 오후 8시까지 학교가 돌봐달라는 게 아니라 오후 1시에 하교하거나 빈약하게 열리는 방과후 수업에 목매는 상황만 면해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린이집·유치원은 맞벌이 부부에게 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를 돌보는 ‘연장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누구도 아동학대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가 돌보지 않기 때문에 주로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조부모가 돌봄 책임을 맡거나 태권도와 피아노학원 등의 사교육 업체들이 돌봄서비스를 떠맡는 상황이다. 학교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본다면 조부모와 사교육의 개입, 직접 돌봄 등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다. 초등 전일제의 취지는 ‘아이를 학교에 가둬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아이를 대책 없이 밖으로 내몰지 않고, 언제나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했지만, 이제라도 정부는 세심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필요한 일들을 추진해야 한다. 초등 돌봄 강화는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의 공약이기도 했다. 만일 중앙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면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이 해결사가 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학제 개편과 초등 전일제 논란을 그냥 미숙한 정부의 헛발질로만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보육과 교육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는 언제나 절실했고,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 지금이 바로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할 시기다.

윤형중 정책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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