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을 출마’ 이재명의 너무 안전한 선택… “문제는 명분”



"대선 패장이 연고도 없는 지역구에?"
"선당후사인데 무슨 문제냐" 반론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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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결국 출마한다. 출마 지역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로 비어 있는 인천 계양을.

민주당의 지방선거 위기론을 연료 삼아 대선 패배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초고속 정계 복귀를 하는 것이다. 5년 후 대선 재도전이라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국회의원 경험을 쌓고 당을 장악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 패배는 전적으로 내 탓"이라고 했던 그가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찰도 생략한 채 지나치게 성급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상당하다. 경기지사, 경기 성남시장을 지낸 이 전 후보는 계양을에 연고가 없다. 이 전 후보의 이번 선거가 ‘명분과의 싸움’이 될 것이란 얘기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6일 전체회의에서 이 전 후보의 계양을 보궐선거 전략공천을 의결했다. 경선 없이 ‘무혈 입성’을 허용한 것이다. 고용진 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당 지도부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출마해 줄 것을 이 전 후보에게 요청했다"면서 “이 전 후보는 지방선거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선 패장이 연고도 없는 지역구에?"…"선당후사" 반박도

문제는 빈약한 명분이다. 지난주까지 이 전 후보의 측근들마저 “명분이 부족해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마이너스”라며 계양을 출마에 반대했다.

특히 정치적 본거지 격인 경기 성남 분당갑에서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리는데, 인천에 출마하는 건 당선 가능성만 좇는 기회주의적 행보로 비칠 수 있다는 당내 우려가 많았다. 계양을은 2004년 17대 총선 이후 2010년 보궐선거를 제외하고 매번 민주당 계열 후보가 승리한 지역이다. 분당갑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피하는 모양새가 된 것도 이 전 후보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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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왼쪽에서 세 번째)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선 패배 다음 날인 3월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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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재창출 실패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평가와 반성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데 패배 당사자가 당의 간판으로 복귀하는 것을 두고도 쓴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패배한 대선후보가 이렇게 빨리 선거에 출마한 사례는 2007년 12월 대선 패배 후 이듬해 4월 총선에 출마한 정동영 전 의원 말고는 없다"며 "정 전 의원의 결말을 보라"고 지적했다.

계양을을 택한 정치적 명분도 부족하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도중 이낙연 전 당대표가 의원직을 사퇴하자 민주당은 "책임 정치를 하겠다"며 이 전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이번에도 무공천이 순리에 가깝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당시 이 전 대표에게 물었던 귀책 사유와 책임이 이 전 후보에게는 해당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당 위해 구원투수로 나선 선당후사 명분 충분" 반박도

이에 이 전 후보와 민주당은 ‘지방선거 열세를 만회하려는 당의 부름에 따른 희생적 출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전 후보 전략공천 결정 직후 페이스북에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민주당은 우리가 가진 자원을 최대치로 동원해야 하고, 우리 당의 최대 자원인 이 전 후보의 합류는 선거 승리의 필수 조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출마가 이 전 후보에게 독배가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탈환에 실패하는 등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면, 책임론이 이 전 후보를 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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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민주당 비대위는 이날 회의에서 이재명 전 대선후보를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전략 공천하기로 의결했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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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내 진입이 급선무" 실리 감안한 듯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이 전 후보는 올해 8월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출마한다. 그 전에 당내 기반을 확실히 다지려면 여의도에 일찌감치 안착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후보와 가까운 의원은 "원외 당대표는 활동 반경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전 후보가 법인카드 유용 혐의 등에 대한 경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불체포 특권이 있는 의원직에 도전하려 한다는 의심의 시선도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방탄조끼 출마설’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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