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DSR 딜레마..묶자니 완화 효과 적고, 풀자니 집값 자극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공약이 딜레마에 빠졌다. 소득에 따라 대출한도를 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고민의 핵심이다. DSR 규제를 풀자니 가계부채와 집값이 들썩이고, 규제를 유지하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청년층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반쪽 대책이 될 수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당선 이후 첫 외부 공식일정으로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아 상점들을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당선인은 지역과 상관없이 1주택 실수요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는 LTV를 80%까지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다주택자는 보유 주택 수에 따라 LTV를 30%, 40% 등으로 차등을 둔다. 현재는 지역·집값 등에 따라 LTV 20~70%가 적용된다. 15억원을 넘는 주택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대출 규제 완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다. DSR은 소득에서 빚 상환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지난 1월부터 총 가계대출이 2억원이 넘는 대출자는 DSR 40% 규제를 적용받는다. 예컨대 연봉 5000만원의 직장인이라면 빚을 갚는 데 연간 2000만원(소득의 40%) 이상을 써서는 안 된다.

오는 7월부터는 대출액이 1억원을 초과하면 DSR 규제가 적용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7월 이후 593만명이 DSR 규제 대상이 된다.

DSR은 소득과 대출 유무에 따라 대출 한도가 정해진다. 그러다 보니 소득이 적거나 대출을 보유한 저소득층일수록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DSR 규제 도입 당시 ‘사다리 걷어차기’란 비판이 나온 이유다. 윤 당선인의 공약대로 실제 LTV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DSR 규제가 유지되면 소득이 적은 경우에는 별다른 실익이 없다.

연 소득 5000만원인 직장인 A씨와 연 소득이 1억원인 B씨가 서울 지역의 집값 9억원 아파트를 사며 주택담보대출(금리 연 3.46%, 30년 원리금 균등 상환)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LTV 규제 완화되면 대출금액 얼마나 늘어나나01.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른 대출이 없는 상황에서 DSR 규제 완화 없이 LTV 규제만 70%로 풀리면 A씨의 대출한도는 3억6000만원에서 3억7300만원으로 1300만원 늘어난다. 반면 B씨의 대출 한도는 3억6000만원에서 6억3000만원으로 높아진다.

만약 신용대출이 있으면 대출한도는 더 줄어든다. 한도 5000만원의 마이너스통장(금리 연 4.25%)이 있는 경우 A씨의 대출 한도는 LTV 규제 완화 이전과 같은 1억4600만원 수준이다. 반면 B씨는 대출 한도가 3억6000만원에서 5억1900만원으로 늘어난다.

때문에 청년층 등 실수요자의 주택 구입 기회를 늘린다는 공약 취지를 살리려면 DSR 규제를 일부라도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는 “LTV는 완화하며 DSR을 풀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청년층에 한해서라도 DSR을 일부 완화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도 금융당국은 청년층 등의 미래소득을 반영해 DSR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한 시중은행은 연 소득 5000만원인 28살 직장인이 30년 만기로 대출받을 경우 6192만원을 미래소득으로 인정해 DSR을 산정한다. 다만 각 은행이 적용 여부를 알아서 정하는 데다, 소득이 적은 청년층의 실제 대출 가능액이 늘어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LTV 규제 완화되면 대출금액 얼마나 늘어나나01.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쪽짜리 대출 규제 완화’라는 지적에도 DSR 규제까지 손대기에는 쉽지 않다. 급등세가 잦아든 부동산 가격을 다시 자극할 수 있는 데다, 코로나19 상황 속 급증한 가계부채도 부담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 빚은 1862조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7.7% 늘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가 소비를 제약하는 DSR 임계수준을 45.9%로 추산한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가계의 평균 DSR은 36.1% 수준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확실한 공급대책 없이 대출 규제만 완화할 경우 집값을 다시 자극하고, 금융불균형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경기 하락 등을 대비한 정책 카드로 (DSR을) 남겨놔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증가액 및 증가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당국은 현재 DSR 규제 수준이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주요국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DSR 규제 강도는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의 DSR 기준은 미국 36%, 영국 45%, 유럽연합 30~40% 등이다. 전세대출과 예·적금담보대출이 제외되는 한국과 달리 모든 대출이 DSR 산정에 포함된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미국 등은 적정 DSR 기준을 넘어선 대출은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약탈적 대출’로 여겨, 대출 사고가 나면 금융기관에 소송 등을 통해 법적 책임을 강하게 부과한다”며 “한국은 약탈적 대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만큼 DSR 규제는 유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은 DSR 규제를 어떻게 할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는 DSR 규제 유지 쪽에 무게가 실린 상황이다.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인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 10일 통화에서 “DSR 규제를 유지하고 LTV 규제를 완화하면 건전성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1분과 인수위원인 신성환 홍익대 교수도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총량규제 대신 DSR 관리 강화로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DSR 규제를 유지하고 LTV만 완화하게 되면 소득 중하위 계층은 효과가 없고 상위 계층은 상당 부분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며 “정책의 중심을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는 데 둘지, 소득 중하위 계층도 대출을 받아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기회에 중점을 둘지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 용어사전 >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1년에 버는 소득 대비 갚아야 할 모든 대출의 원리금(원금+이자)의 비율을 뜻하는 지표다. 연소득이 5000만원인 사람이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2000만원이면 DSR은 40%로 산정된다.

「 용어사전 > 담보인정비율(LTV)

LTV (loan to value ratio)는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 인정되는 자산가치의 비율이다. LTV 비율이 50%라면 6억원 주택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은 3억원이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