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연말 부실금융기관 딱지 붙을라..보험사 노심초사

[이데일리 지영의 박정수 기자] 국내 보험사들이 조단위 채권 평가손실을 기록하면서 재무건전성 지표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작년 금리 하락에 채권값이 오르자 수익지표를 좋게 만들기 위해 보유 채권을 대거 시장가격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계정을 변경한 보험사들이 예상치 못한 금리 급등에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줄줄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는 금융사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보험사들의 기존 채권 보유 규모는 최대 수백억에서 평균 수조원대에 달한다. 보험사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부실이 보험 가입자에게 전가될까 불안감도 확산하는 모양새다.

“수익 높이려 했던 게 부메랑”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30일 이데일리가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을 통해 금융감독원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 자기자본 상위19곳의 채권 평가손실 누적 규모는 약 14조7054억원을 기록했다. 보험사별로 생명보험사 중에서는 삼성생명(-5조5415억원)이 가장 손실이 많았다. 이어 농협생명(-2조518억), 한화생명(-1조2401억), 교보생명(-7511억), 신한라이프(-3288억), 동양생명(-1885억), 미래에셋생명(-1062억) 등의 순이었다.

손해보험사 중에서는 삼성화재(-1조469억), 한화손해보험(-1조12억), 메리츠화재(-7918억), KB손해보험(-6863억)원, 현대해상(4635억), DB손해보험(-3383억) 등이 손실을 기록했다.

보험사들의 채권손실 급증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 전망에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초 이후 3.434%까지 올라 지난 2014년 6월 16일(연 3.315%) 이후 약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저금리 시기에는 채권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매도가능 증권이 많을 수록 평가이익이 증가한다. 그러나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평가손실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특히 보험사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코로나19 이후 지속된 저금리 기간에 대부분의 채권을 만기보유 계정에서 매도가능 계정으로 옮긴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회계제도인 IFRS4에서 적용되는 RBC 비율 체제에서는 매도가능증권을 시가로 평가한다. 평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쓴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회계규정상 자산 계정을 한번 옮길 경우 3년간 돌려놓을 수 없다. 보험사들이 자본 확충에 비상이 걸린 배경이다. 저금리 시기에 누렸던 호황이 금리 급등기에 접어들자 부메랑으로 돌아온 곳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농협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은 보유 채권을 전량 매도가능계정으로 옮겨 지난 2020년 연말 기준 만기보유채권이 0원을 기록했다.

보험사 채권 보유 수백억~수조원대…금리 추가 급등 시 부실 금융지관 지정 ‘촉각’

채권 손실 급증에 보험업계 전반에서 지급여력(RBC) 비율도 급락하고 있다. RBC 비율은 고객이 보험금을 청구할 경우에 보험사가 제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눠 산출하고, 이 수치가 높을수록 재무 건전성이 양호한 것으로 판단한다. 보험업법에서는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금융당국에서는 150%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RBC 비율이 100% 이하로 하락할 경우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자본 확충 등 재무개선 요구 등 적기시정조치를 취한다. 이때 적절한 계획을 수립, 이행하지 못할 경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다.

1분기 기준 한화손해보험(122.8%), 농협생명(131.5%), DB생명(139.14%), 흥국화재(146.65%) 등은 RBC 비율이 당국의 권고 기준 이하로 내려간 상태다. 연초에 이미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된 보험사도 나왔다. MG손해보험의 RBC 비율은 88.3%로 보험업법 기준을 현저히 하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아직 RBC 비율이 규정치 이상을 유지하는 곳들도 안심하긴 이르다. 연준이 추가 빅스텝을 단행하면 매도가능채권을 대규모 보유하고 있는 보험사들의 손실은 폭증할 수밖에 없고, RBC 비율도 덩달아 급락할 전망이다. 통상 장기 국고채금리가 0.1%포인트 오르면 RBC 비율은 1~5%포인트 하락한다.

별도재무제표 기준 보험사별 매도가능채권 보유 규모는 평균 조단위에서 최대 수백조에 이른다. 생명보험사 중 삼성생명이 119조5847억원으로 가장 많고 농협생명(42조7532억), 교보생명(36조1861억) 한화생명(25조2598억), 신한라이프(12조8436억) 등이다. 손해보험사 중 삼성화재(30조765억), DB손해보험(7조9943억), 한화손해보험(7조4516억), 메리츠화재(6조4101억), 현대해상(6조2400억)원대 등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보험사에서 구제를 요청하는 민원이 쏟아졌고, 당국도 현황 점검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2일 20여개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CEO를 소환해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를 통해 RBC 비율 악화 관련 우려를 전달하고 업계 건의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이 당국에 건넨 건의안의 핵심은 RBC 규제 완화다. 오는 2023년부터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서 자산과 부채가 시가평가된다. 6개월 뒤면 교체될 기준에 곤혹을 치르고 있으니 미리 완화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당장 발표할 내용이 정해진 것이 없다. 아직 대안을 내놓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러 가지 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며 “금융위원회와 긴밀히 상의해야 하는 사안이고, 상황을 더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입자 불안 고조…“최악에도 5000만원까지 보호”

한편 보험사 부실 우려에 따라 보험 계약자들의 불안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될 경우 당장 영업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해당 보험사 관련 정리절차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보험료 수납·지급 등은 진행된다. 보험업법에 따라 해당 회사의 보험계약 전체가 다른 보험사에 이전하는 제도도 있다. 최악의 경우 보험사가 파산하더라도 예금보험공사에서 예금보호법에 따라 개인이 가입한 대부분의 보험상품에 대해 5000만 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다만 예금보호법에 따라 보장받는 금액의 경우 주된 보호 대상이 해지환급금이다.

지영의 (yu0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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