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은 왜 ‘우리들의 블루스’를 선택했을까?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사진제공=tvN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배우 차승원은 노희경 작가의 신작인 tvN 주말극 ‘우리들의 블루스’의 출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이병헌이 아니라 이병수 아니야?’라며 처음에는 안 믿었다”라고. 이병헌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다. 

이병헌은 드라마 출연이 잦은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가 선택한 작품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2003년 ‘올인’을 시작으로 ‘아이리스’와 ‘미스터 션샤인’ 등 작품성뿐만 아니라 흥행까지 부여잡은 작품들이다. 그런 그가 ‘미스터 션샤인’ 이후 4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가 ‘우리들의 블루스’다. 차승원의 이 한 마디에는 동갑내기 배우인 이병헌이 가진 안목과 더불어 그의 연기력에 대한 존중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옴니버스 드라마에서 이병헌가 맡은 동석의 이야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소위 말하는 ‘미친 존재감'(이 표현은 2009년 이병헌이 출연한 드라마 ‘아이리스’ 속 배우 김승우를 향한 찬사로 쓰인 후 보편화됐다)을 보여줬다. 트럭에 잡다한 물건을 넣고 파는 만물상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동석은 푸릉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선배들의 동창회에 껴서 자연스럽게 춤을 추며 여흥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들의 블루스’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사진제공=tvN

대중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이미 그와 비슷한 이병헌의 모습을 봤다. 오랜만에 재회한 새 엄마의 집에서 얹혀 살던 그가,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능청스럽게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장면은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본 이들의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렇듯 어깨에서 힘을 잔뜩 뺀 이병헌의 모습을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반갑다.

이 드라마에서 이병헌이 맡은 역은 동석이다. 제주도에 엄마 집이 있지만 가지 않고, 트럭 하나에 의지해 살아간다. 잠도 트럭에서 잔다. 제주 인근 흩어진 섬마을 어르신들이 필요로 하는 생선이나 어패류 등 신선 식품과 잡다한 세간살이를 가져다 준다. 돈벌이라기보다는 정(情)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다른 만물상에게서 물건을 샀다는 말에 버럭 화를 낸다. 그러면서 “오늘 지나면 팔 수도 없다”며 생선 등을 모조리 차 밖으로 내버린다. 물건을 못 팔아서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엄마처럼, 누나처럼 생각하던 이들의 ‘배신’에 화가 나서다. 동석은 그런 인물이다.

동석의 상대역은 배우 신민아가 연기하는 선아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2회 프롤로그에서 잠시 소개됐다. 시점 상 7년 전이다. 동석은 선아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입을 맞췄지만, 선아는 “내가? 오빠를?”이라고 말해 상처를 준다. 결국 선아는 동석이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 앉은 채 돌아온다.

아직까지 두 사람의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들의 블루스’의 홈페이지를 보면 동석에 대해 “참 지켜주고 싶었던 첫사랑 그 기집애(선아)가 내 순정을 열일곱 그때, 서른둘 그때, 두 번씩이나 짓밟아 버리지만 않았어도”라는 소개글이 나온다. 동석은 첫사랑 선아를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하지만 4회 프롤로그에는 선아가 아이를 키우며 우울증을 앓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한수(차승원 분)와 은희(이정은 분)의 이야기를 잇는 동석과 선아의 사연 역시 기구할 것이라 예상된다.

사진제공=tvN

이 드라마에 대해 이병헌은 제작발표회에서 “어떤 회는 내가 주인공이고, 어떤 회는 내가 지나가는 사람처럼 잠깐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게 재미있었다. 드라마의 레이어가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그곳에 진짜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메라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옴니버스식 구성은 노희경 작가가 ‘우리들의 블루스’를 집필하며 처음부터 짜놓은 판이라 할 수 있다. 노 작가는 제주의 괸당문화(모두가 친인척인 개념)를 말하며 “남이 아닌 우리라고 여기는 제주 사람들의 문화가 사라져가는 한국의 뜨끈한 정서를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관계라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이 드라마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각각이 모두 주연이라는 뜻이다. 

이병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원톱’ 배우다. 그가 출연한다고 하면 메이저 투자배급사는 쌍수 들고 반긴다. 이에 그는 빈틈없는 연기력과 흥행으로 화답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원톱’을 고집하지 않는다. 특별출연도 마다 않는다. 2016년 개봉된 영화 ‘밀정’에는 베일에 감춰졌던 의열단장 정채산 역을 맡아 깜짝 등장했다. ‘연기 9단’이라 불리는 이병헌과 ‘밀정’의 주인공인 송강호가 마주한 이 장면은 ‘밀정’의 백미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에서 각각 나쁜놈(이병헌), 이상한놈(송강호)을 맡았던 두 배우의 재회라 더욱 흥미로웠다.

사진제공=tvN

2017년에는 가수 싸이의 ‘아이 러브 잇’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그의 모습에 대중은 열광했다. 이후 싸이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병헌이 직접 ‘어렸을 때 내가 브레이크 댄스를 췄었다’고 말했다. 특유의 꺾이는 동작이 눈에 띄었다. 이 춤을 혼자서 볼 게 아니라는 생각에 몇 년 동안 뮤직비디오 출연을 해줄 것을 계속 졸랐다”면서 “이병헌이 내 섭외 요청에 생각보다 쉽게 응해줬다.  카메오 출연이어서 다 추고 바로 돌아가셔도 된다고 했는데도 극구 부인하며 ‘춤의 각도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춤을 다시 추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병헌의 프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혹자는 이병헌의 ‘우리들의 블루스’ 참여를 두고, ‘왜 출연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출연 분량을 염두에 둔 질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거꾸로 묻고 싶다. ‘왜 출연하면 안 되나?’ 

모든 일에는 완급(緩急) 조절이 필요하다. 타이틀롤을 맡아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작품에 ‘급’이라면 이병헌에게 ‘우리들의 블루스’는 ‘완’이다. 온 몸에서 힘을 뺀 그의 생활 연기, 여기에 더해진 자연스러운 제주도 방언은 색다른 맛을 준다. 

이병헌은 연기력 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도 빼어난 배우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가 30년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다. 타고난 쇼맨이자 쇼비즈니스의 정점에 선 그의 연기 장단에 맞춰 대중은 함께 블루스를 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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