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 ‘성토장’ 된 주총..”죄송합니다” 고개 숙인 CEO들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이 5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사업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대표이사인 기 부회장은 주가가 주당 35만원을 회복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으라는 주주들의 요구에 “수용하겠다”고 했다. 셀트리온 제공

“주주들을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셀트리온의 창업주인 서정진 명예회장이 25일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서 명예회장은 이날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셀트리온 정기 주주총회에 전화를 연결해 “현재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본의 아니게 많은 상처를 드려 명예회장으로서 그리고 또 대주주로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적으로 견인해 과거의 자리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고개 숙인 CEO들

이날 주주총회는 셀트리온 경영진을 겨냥한 주주들의 성토장이었다. 소액주주연대를 대표해 나온 한 주주가 “주가가 35만원이 될 때까지 기우성 대표이사 부회장과 서진석 이사회 의장은 최저임금만 받고 근무해야 한다”고 제안한 게 도화선이 됐다.

기 부회장은 “종합적으로 고민해보겠다”고 했다가 재차 요구가 나오자 “동의하겠다”며 주주 제안을 수용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주주총회는 개인 주주들의 공격적인 발언이 쏟아지면서 오후 1시까지 이어졌다. 서 명예회장이 주총 막판 전화 연결을 자처한 것도 성난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고개를 숙이는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공급망 대란, 미국의 금리 인상 등이 겹쳐 주요 기업의 주가가 급락한 여파다. 지난해 3200선을 넘나들던 코스피지수는 이날 종가 기준으로 2729.98까지 떨어졌다. 대다수의 투자자가 주식 투자로 손실을 봤다는 의미다.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개인 주주가 늘어난 것도 주총 분위기가 과열된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개인 주주는 1374만 명(12월 결산 상장법인 기준)으로 전년 대비 50%가량 늘었다.

오는 29일 주총을 앞둔 카카오그룹은 일찌감치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는 지난달 “주가 15만원 회복을 목표로 잡았다”며 “그때까지 제 연봉과 인센티브 지급을 일체 보류하며, 법정 최저임금만 받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28일 주총을 여는 카카오페이 신원근 대표 내정자 역시 “목표 주가 20만원을 달성할 때까지 최저임금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카카오와 카카오페이 주가(이날 종가 기준)는 각각 10만5000원, 14만1500원이다.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 골목상권 침해 논란, 올초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스톡옵션 주식 ‘먹튀’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고점 대비 30~40%가량 하락했다.

 ○주주 환원 약속 잇따라

지난해 최고점보다 25% 주가가 하락한 포스코도 CEO가 직접 나서 주주들을 달랬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총에서 “보유 중인 자사주 중 일부를 올해 안에 소각하겠다고 약속했다”며 “현재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 중에서 소각 규모와 시기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도 주총장에서 진땀을 뺐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은 지난 16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GOS 관련 질문을 받자 “주주와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 고객 여러분의 마음을 처음부터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 말씀 드린다”며 허리를 숙였다.

GOS는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게임 등을 실행할 경우 기기 성능을 조절해 화면 해상도를 낮추는 소프트웨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22를 출시하면서 GOS를 비활성화하거나 삭제할 수 없도록 해 이용자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을 국내 증시의 구조적인 변화로 보고 있다. 주가가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돼도 올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주 숫자가 늘어난 것보다 이들이 젊어졌고 똑똑해졌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이들은 경영진의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면 주가 수준과 관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송형석/구민기/한재영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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