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건강에서 젠더를 고려한다는 것은

[류한소]

지난 2월 24일 노동건강정책포럼(www.노동건강정책포럼.kr) 주최로 ‘젠더와 노동건강: 연구와 실천의 과제’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젠더와 안전보건정책 연구 동향(발표: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과 현장 사례 발표로 진행되었으며, 노동자 건강에서 젠더를 고려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노동건강정책포럼 주최로 토론회 “젠더와 노동건강 : 연구와 실천의 과제”가 열렸다.
ⓒ 노동건강정책포럼
 

우선 첫 번째 순서인 연구 동향 발표는 1990년대 이후를 본격적인 여성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시작점으로 보고 이후 전개를 정리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시기별로 구분해 보면, 90년대에는 모성보호를 중심으로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었다.

2000년대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교 급식 조리 노동자, 보육 교사, 돌봄 노동자 등 ‘나도 노동자다’라고 외치는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건강 문제에 대한 인정은 우선 이들이 하는 일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했다.

2010년대에는 건강 문제 영역이 감정노동, 첨단산업의 생식독성 등의 문제까지 확대되었다. 발표자는 이러한 과정 중 어느 것도 싸우지 않고 쟁취된 것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의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협력,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제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90년대 한국통신공사 전화교환원들의 경견완장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어져 사업주에게 근골격계질환의 예방 의무를 부과하였다. 2010년대 중반 마련된 감정노동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들도 그러한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드러나지 않은 여성노동 위험

그간의 역사를 살펴본 후, 지금 현재 현장의 안전보건 문제와 대응 사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적 괴롭힘 상담 사례(홍수경, 서울여성노동자회), 도시가스검침노동자의 안전 문제(이장우, 공공운수노조), 여성노동자 일터 화장실 실태 및 건강 영향 조사(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보건의료산업노조 여성노동자 건강권 실태(안태진, 보건의료산업노조), 학교급식 노동자 폐암 대응 사례(정하나,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가 발표되었다.

각 사례는 노동의 종류와 그로 인한 건강 문제는 달랐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공통적인 상황을 조명했다. 성적 괴롭힘 상담 사례에서는 성적 괴롭힘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적 조직문화,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업주는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배려의무의 일환으로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시가스검침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에서 고객으로부터 성폭력에 노출되는 배경에는 과도한 실적 달성 요구 및 성과제에 따른 업무과중이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방광염 역시 일하면서 화장실을 갈 수 없는 노동환경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건강 문제가 그동안 논의되기 어려웠던 것은 화장실 이용의 권리 또한 건강권 문제라는 인식의 부족, 여성질환에 대한 편견과 무관하지 않았다.

단체 급식 조리 노동자의 폐암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도 ‘밥하는 일’을 노동으로 치지 않는 여성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와 젠더 규범이 작동한 결과였다. 튀김요리를 할 때 나오는 조리흄이라는 유해물질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작업환경측정대상 물질이 아니다.

산재 신청 후 근로복지공단에서 재해조사를 할 때는, 단체 급식 조리 노동자에게만 가정에서 요리를 얼마나 하는지를 묻는다. 이는 급식조리 노동자가 일터 안팎에서 ‘밥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왔을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이 모든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일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노동자들 또한 자신의 건강 문제가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TV에 나오는 산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 역시 여성의 일과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을 평가절하해 온 사회구조적 편견이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토론회의 다양한 사례들은 여성 노동자 건강권 논의가 우선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기

토론회 말미에는 가스 검침과 콜센터 등 남성노동자들 또한 많아지는 직종에서 젠더를 고려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방안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문은 ‘젠더를 고려하지 않고’ 누가 일해도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물음은 노동환경에서 ‘젠더를 고려한다’는 것이 ‘여성 노동자에게만 맞춘다’, 혹은 나아가 ‘여성의 편의를 과도하게 봐준다’로 인식될 가능성을 방증한다. 그리고 이는 남성의 높은 산재사망률과 합쳐져 남성에 대한 역차별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 또한 젠더 측면에서 더 많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의 높은 산재 사망은 남성이 과도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젠더 규범, 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감 부과, 그들이 호소하는 신체적 고통을 둔감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젠더를 고려한다는 것은 일터에 산재해 있는 노동자의 건강을 해롭게 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노동자의 생물학적 특징은 물론이고 그가 가진 사회적 특징들과 상호작용하여 특정한 사람들에게 위험을 생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즉 노동자들의 종사상 지위, 직무 할당, 직장 안팎에서의 책임감과 활동에 차이가 있고, 이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며, 이는 노동자 건강에 해가 되는 젠더와 관련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젠더를 고려한다는 건 ‘표준 남성’에 속하지 않는 여성, 장애인, 체구가 작거나 연령이 높은 남성, 성별 불일치감을 느끼는 사람 등 누구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접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회는 직업건강 연구, 노동자의 건강과 관련된 입법과 시행, 나아가 노동시장과 고용정책에서 더 많은 젠더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한소님은 한노보연 회원으로 사회학 연구자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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